사료값만 270만원 … 농가 빚더미, 소비자는 비싸서 못 먹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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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충남 논산 우시장에서 산지수집상들이 소를 둘러보고 있다. 한우는 최근 사육두수 증가로 산지가는 떨어졌는데 복잡한 유통단계 때문에 소비자가는 내리지 않고 있다. [논산=프리랜서 김성태]

“밑져두 어떡해유. 당장 사료빚 땜에 내가 죽겠는디유.” 15일 오전 5시30분 충남 논산 우시장. 우시장 개장을 알리는 불이 켜지자 소를 쇠줄에 묶으려는 주인과 필사적으로 버티는 소들이 뒤엉켜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30여 분쯤 지나 어수선하던 장내가 정리될 무렵 첫 거래가 성사됐다. 730㎏짜리 소(거세우)를 ㎏당 7700원씩 쳐 563만원에 판 정재권(56)씨를 만났다. 정씨는 “손해유 손해. 사료값도 못 건졌슈”라고 말했다. 논산 우시장에는 이날 100여 마리의 소가 매물로 나왔지만 30여 마리만 거래됐다. 한우 산지가가 지난해보다 마리당 50만~100만원쯤 떨어진 탓에 소를 판 농민도, 산 산지수집상도 흥이 나지 않는 표정이었다. 농가는 산지가가 떨어져 사료값도 못 건진다며 울상이지만 복잡한 유통구조에 갇힌 쇠고기값은 고공행진중이어서 소비자는 사 먹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정씨는 충남 연산군에서 20년 넘게 소를 키웠다. 현재는 130여 마리를 기르고 있다. 정씨는 “밀린 사료값만 7000만원이 넘는다”고 했다. 이날 소를 판 것도 밀린 사료값 중 일부라도 갚기 위해서였다. 사료값이 너무 밀려 공급이 끊길 위기에 처해 어쩔 수 없이 밑져 가며 소를 팔았다는 것이다.

 한우농가는 크게 암소를 키워 송아지를 낳아 파는 번식농과, 정씨처럼 송아지를 사다 살을 찌워 고기용으로 파는 비육농가로 나뉜다. 비육농가는 7~8개월짜리 송아지(180만~200만원)를 사다 23개월 정도 키워 내다 판다. 정씨는 송아지를 구입해 400㎏ 정도 쌀찌우는 데 사료값만 270만원 이상 들었다. 여기에 축사 바닥에 까는 왕겨·톱밥비, 수도비, 방역비, 전기비 등 추가비용이 100만원 정도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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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가 소를 팔아 손에 쥔 돈은 송아지값(180만원)과 경비(370만원)를 제하면 13만원 정도다. 다른 한우 농가의 사정 역시 정씨와 크게 다르지 않다. 새벽부터 냄새 나는 쇠똥을 치우고 가슴 졸이며 방역주사를 놓아가며 2년여 소를 키우지만 손에 쥐는 돈은 10만원 남짓에 불과하다. 여기에 더 높은 한우 등급을 받기 위해 비타민이나 효소를 섞여 먹였다면 남기기는커녕 손실을 피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논산 우시장에서 만난 한우 농가들이 “사료값이 내리지 않는 한 한우 농가는 다 죽을 수밖에 없다. 차라리 어디 가 품을 파는 게 소 키우는 것보다 나을 것”이라고 푸념하는 이유다.

 사료값이 비싼 건 한우가 먹는 곡물이 섞인 배합사료는 99% 이상을 수입산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료회사들은 세계 곡물값이 계속 오르니 사료값 역시 비싸질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CJ제일제당의 생물자원사업부문 관계자는 “소 배합사료에는 옥수수가 70% 이상 들어간다”며 “그런데 세계곡물시장에서 옥수수가 점점 품귀현상을 보일 정도고 가격도 계속 뛰고 있다”고 말했다.

옥수수는 특히 2000년 초부터 석유의 대체제인 바이오에탄올용으로 수요가 늘면서 곡물시장에서도 구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결국 한우는 이렇게 생산 단계부터 수입소에 비해 원가가 두 배 이상 비싸게 출발하는 셈이다. 호주나 미국 등의 소는 광활한 초지에서 맘껏 풀을 뜯고 현지에서 조달한 배합사료를 먹다 보니 생산원가가 230만원 안팎이다.

 우시장에서 산지수집상의 손을 거친 소는 도축장과 가공장, 도매인 등 7~8단계를 거쳐야 최종 소비자에게 도착한다. 각각의 유통 단계마다 비용과 마진(이익)이 발생한다. 논산 우시장에서 소를 산 산지수집상 김대환(62)씨는 소 8마리를 차에 싣고 충북 음성의 축산공판장(도축장)으로 향했다. 김씨는 “우시장에서 모은 소를 도축장까지 운반하는 데도 소 한 마리당 5만~8만원의 운송비가 들어간다”고 말했다. 도축장에서 소 한 마리를 도축하는 데는 또 도축비(12만5000원)를 내야 한다. 이후 축산물품질평가원의 등급 판정을 받아 경매에 부쳐진다. 경매장에서는 경매 참가 자격증이 있는 매매참가인들이 소를 낙찰받아 소값의 1.5%가량(8만~10만원)을 수수료로 뗀다. 이후 가공장에서 정육과 뼈를 분리하는 발골비(15만~20만원)가 들어간다. 도매인의 손에 들어간 쇠고기는 소매상에게 직접 넘겨지기도 하고, 도매상과 소매상을 잇는 소매사인을 거쳐 소매상에 도착한다. 대형마트나 일반 정육점, 백화점 등에서 판매되는 한우를 730㎏짜리 소 한 마리로 환산하면 대략 950만~2100만원. 결국 소비자는 7~8단계의 유통과정을 거치며 산지가보다 1.8~3.7배나 비싸진 쇠고기를 사 먹는 셈이다.

 한우값을 낮추려면 도축 전 생산단계와 도축 후 유통과정으로 나눠 방안을 찾아야 한다. 먼저 생산단계에서는 사료값을 낮추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사료값을 끌어내리는 일은 개별 축산 농가 차원에선 불가능하다. 정부나 농협이 나서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는 얘기다. 충남대 박종수(동물바이오시스템과학과) 교수는 “일본은 인도네시아 등에 땅을 장기간 임대해 옥수수나 목초를 재배해 싼값에 축산 농가에 공급한다”고 말했다. 우리 역시 유통단계를 축소하는 것도 급선무다.

 이마트는 지난해부터 한우 바이어가 경매장에 매매참가인으로 참여해 소를 낙찰받아 자체 가공해 판매한다. 이마트 홍성민 한우바이어는 “도축 후 한우 유통단계를 줄였더니 판매가를 시중가보다 10~30%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한우자조금관리위원회 윤영탁 사무국장은 “국내 소비자는 소의 안심·등심·갈비만 선호한다. 잘 먹지 않는 사골·잡뼈 등의 레시피를 개발해 소비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 부위별로 소비가 고루 이뤄지지 않다 보니 안심·등심 등에 비선호 부위 가격까지 얹혀져 결과적으로 한우값이 더 비싸진다는 것이다.

특별취재팀=최지영·장정훈·구희령·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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