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차 음주운전 남편도 보험사에 사고부담금 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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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2009년 10월 박모(54)씨는 술을 마신 채 아내 명의의 자동차를 운전하다 중앙선을 넘어 마주오던 서모씨의 승합차와 충돌했다. 이 사고로 서씨는 경추부 염좌 등 부상을 입었다. 박씨 아내가 가입해 있던 한화손해보험은 치료비 555만원을 서씨에게 지급했다. 한화손해보험은 이후 보험 약관의 ‘음주운전 사고부담금’ 조항을 근거로 박씨에게 250만원의 부담금을 내라고 요구했다. 박씨가 “해당 조항은 보험가입 명의자가 운전한 경우에만 해당한다”며 거부하자 한화손해보험은 박씨를 상대로 구상금 청구소송을 냈다.

 자동차보험 표준약관에 따르면 보험사는 가입자가 직접 음주운전을 하거나 가입자 승인 아래 (가입자 가족 등의) 음주운전이 이뤄져 사고가 났을 때 피해자에게 보험금을 일단 지급한 뒤, 운전자에게 250만원 한도에서 부담금을 물릴 수 있다.

 소송의 쟁점은 보험 가입자는 아니지만 보험의 보호를 받는 가족이나 지정 운전자에게도 사고부담금을 낼 의무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1, 2심은 “보상금 청구 약관에는 보험 가입 명의자와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 가족, 지정 운전자를 구분했지만 부담금 조항에서는 그냥 ‘피보험자’라고만 규정한 만큼 이는 보험 가입 명의자로 한정해야 한다”며 박씨의 손을 들어줬다. 보험 가입 명의자 외에 보험금 지급대상인 가족이나 지정 운전자에게 사고부담금을 부담시키는 게 부당하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1부(주심 박병대 대법관)는 지난 14일 원심 판결을 깨고 원고패소 취지로 사건을 창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보험 가입 명의 운전자뿐 아니라 가족이나 지정 운전자도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면 이들 운전자도 약관상 사고부담금 부과대상으로 봐야 한다”며 “이를 잘못 판단한 원심은 위법하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은 대법원이 보험 가입 명의자가 아닌 운전자에게 사고부담금 부과대상임을 인정한 첫 판례다.

이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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