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잃고 폐결핵 걸린 40대男, NHN에 소송…왜?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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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빚이 5억원입니다.” 김모(45)씨의 목소리는 갈라지고 탁했다. 직장을 잃고 기초생활보호대상자가 된 것도 모자라 폐결핵까지 걸렸다. 어두운 PC 방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줄담배를 피웠기 때문이리라. 최근에는 뇌종양까지 생겨 전전긍긍하고 있다. 김씨는 “웹보드 게임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무너뜨렸다”고 한탄했다. 처음 시작한 건 14년 전. 누구나 마찬가지로 온라인에서 재미 삼아 하던 고스톱·포커 게임이었다. 하지만 게임머니를 현금으로 바꿔주는 불법 환전상을 만나며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는 “환전상을 알고부터 게임머니가 곧 현금이 됐고 게임이 직업이 됐다”고 털어놨다. 그는 게임용 아바타 환불 건으로 NHN·한게임을 상대로 소송을 건 상태다. 4월 16일 수원지방법원에서 첫 재판이 열린다.

 #2. 3일 새벽 1시 서울역 주변 모 PC방. 장모(38)씨가 구석에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재떨이에는 담배꽁초가 수북했다. 포커 게임 한 판에 걸리는 시간은 1분 남짓. “오늘은 좀 땄다”며 웃는 장씨가 밤을 새워 번 돈은 게임머니로 110억, 현금 11만원어치다. 그는 “잘될 때는 하루에 현금 100만원어치를 딴 적도 있다”며 “하지만 그동안 잃은 것에 비하면 새 발의 피”라고 말했다. 건설 일용직을 하며 하루 벌어 하루 게임을 한다는 장씨. 12년간 게임에 들인 돈만 5000만원이 넘을 거라고 말했다.

신용불량자 되고 수시로 자살 충동
웹보드 게임이 도박 중독자를 양산하고 있다. 컴퓨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온라인으로 도박을 할 수 있어서다. ‘안방 카지노’란 말이 나오는 이유다. 게임머니만 이용하면 괜찮다. 게임머니를 현금화해주는 환전상을 이용하는 순간 누구나 쉽게 도박에 빠져든다.

 금모(36·가명)씨도 이들 중 한 명이다. 금씨는 “게임회사로 찾아가 테러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그가 온라인 도박을 시작한 건 13년 전. PC게임방에서 친구가 하루에 수백만원씩 따는 모습을 보고서다. 현재 그는 온라인 게임 중독으로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자살 충동을 느낀다고 했다. 인터넷 카페에서는 이런 중독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한게임 피해자들이 주로 가입한 ‘인터넷도박방지위원회’ 카페는 회원수가 1200명을 넘는다.

 범죄자도 양산한다.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유창수(39·가명)씨는 2년여 만에 수억원을 탕진한 뒤 사업은 기울고 가족은 흩어졌다. 혼자 남은 유씨는 마약에 손을 댔다.

 중독예방치유센터 김현수 상담사는 쉽게 도박을 중단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약물과 마찬가지로 도박도 일단 중독되면 개인의 힘으로는 벗어나기 어렵다”며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는 등 치유 노력을 꾸준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스톱·포커 등 웹보드 게임은 주요 게임회사의 효자 상품들이다. 정상적으로만 즐기면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크게 나쁠 건 없다. 문제는 이게 불법 환전상을 만나 도박으로 변질된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일명 ‘머니상’으로 불리는 환전상은 게임머니를 실제 현금으로 교환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들은 신출귀몰한다. 중국·필리핀 등에 근거지를 두고 점조직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업계에서는 최소한 3000명은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폐해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도박 중독자만 양산하는 게 아니다. 세금은 당연히 안 내고, 거래 과정에서 대포통장을 이용하며, 돈 세탁의 통로로 활용되기도 한다. 지하경제의 한 축인 셈이다. 게다가 머니상을 통해 사실상의 ‘현금 도박’에 빠진 이들은, 실제 해외에 서버를 두고 거액의 현금이 오가는 불법 도박 사이트에 빠져드는 경우가 많다. 게임산업진흥법에 따르면, 게임머니를 현금으로 환전하는 행위는 모두 불법이다. 그런데 어떻게 숱한 머니상이 활개를 칠 수 있을까.

 도박 피해자 장모씨의 도움을 받아 머니상과의 접촉 상황을 지켜봤다. 장씨는 7년간 거래해 왔다는 머니상과 통화해 게임머니를 팔겠다고 했다. 얼마 후 머니상이 약속한 게임 사이트에서 게임 초대 신청 쪽지를 보내왔다. 게임을 진행하면서 장씨는 일방적으로 졌다. 카드를 보지도 않고 베팅을 최대한으로 한 뒤 포기하는 식이다. 흔히 ‘수혈’이라 불리는 게임머니 처분 방식이다. 게임머니 110억이 소진되는 데 걸린 시간은 3분 남짓. 몇 분 뒤 장씨 계좌로 현금 11만원이 들어왔다. 요즘 시세로는 게임머니 10억당 살 때 1만1000원, 팔 때 1만원꼴이다. 장씨는 “일대일 포커방은 거의 다 불법 환전소”라고 단언했다.

 그를 통해 한 머니상과 어렵게 통화를 했다. 중국에서 직원 10여 명을 데리고 ‘사업’을 한다는 이 머니상은 인터넷 전화와 인터넷 뱅킹을 영업 수단으로 쓴다. 그는 “규모 있는 머니상들끼리는 서로 정보를 교류하는 일종의 연합체가 있다”며 “여기서 게임머니와 현금을 얼마에 교환할지 등을 조정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게임업체와 환전상 유착 의혹도
거래 규모도 상당하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불법 웹보드 게임 추정 규모는 최대 13조5000억원(현금 기준)에 이른다. 해외에 서버를 두고 현금을 거래하는 ‘불법 도박 사이트’ 비중이 크지만, 합법적인 웹보드 게임의 ‘그늘’에서 벌어지는 불법환전 시장도 만만찮다. 한게임·넷마블·네오위즈 등 주요 게임업체의 고스톱·포커 등 웹보드게임 매출은 연간 5000억원 규모다. 불법 시장은 두 배를 넘는다. 인터넷도박방지위원회 이창근 위원장은 “머니상 전체가 벌어들이는 돈이 최소 1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들이 근절되지 않는 원인은 불법환전상과 게임업체의 유착 때문이라는 의혹이 든다”고 말했다.

 근거도 있다. 2011년 2월 한 포털 게임업체 자회사 직원이 환전상의 불법도박게임을 눈감아주는 대가로 수억원의 금품을 챙긴 사실이 적발됐다. 지난해 2월에는 불법 환전상을 알고도 방치해 1년여 동안 800억원의 부당수익을 올린 혐의로 또 다른 포털게임업체 임직원 3명이 입건됐다.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 관계자는 “불법 환전상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게임회사의 방조가 의심돼 조사했다”며 “불법 환전상에 대량의 게임머니를 할인 혜택을 주면서 넘긴 정황이 포착됐다”고 말했다.

 게임회사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한게임 홍보 담당 황현돈 과장은 “게임회사들도 불법환전상으로부터 피해를 보는 입장”이라며 “다양한 근절 대책을 세워 꾸준히 실천하고 있지만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고액 베팅 금지 등 문화부 지침 이행 ▶불법환전 신고센터 등 업계 공동 대응 ▶게임 과몰입을 막기 위한 자체 프로그램 운영 등 대책을 시행 중이다.

 단속의 현실적 어려움도 있다. 경찰청 사이버수사대 관계자는 “불법 환전상들이 해외에 서버를 두고 수시로 바꿔 수사상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했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한 관계자는 “불법 사이트가 아닌 합법 게임업체에 대해서는 우리가 감독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이승녕 기자 francis@joongang.co.kr 강신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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