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부르면 心身이 젊어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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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지난 22일 오후 4시30분 경기도 고양시 일산노인종합복지관 1층 대강당. 일곱명의 노인이 기타.드럼.색소폰.전자오르간 등으로 '사랑은 아무나 하나''누이' 등을 흥겹게 연주하고 있다.

백발이 무색할 정도로 악기를 다루는 솜씨가 수준급이다. 2001년 4월 결성된 노인밴드인 '고양시 호수 실버밴드'다. 가장 어린(?) 멤버는 64세의 할머니, 최고 연장자는 81세의 할아버지. 노인 일곱명이 만든 전국 최고령의 실버악단이다.

젊은 시절 군악대원.악극단원.음악교사 등으로 20년 이상씩 음악활동을 했던 이들의 실력은 만만찮다. 창단 멤버인 지연영(68)할머니는 국내 최초의 여성악단인 '세븐 시스터즈'의 기타리스트로 한때는 유명세에 시달렸던 스타였다.

악기를 연주하다 보면 나이를 잊게 된다는 지씨는 "양로원.고아원 등을 찾아 외로운 이웃들에게 사랑의 선율을 선사하는 일에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들의 연주활동은 젊은이들 못지 않다. 창단 후 21개월 동안 무려 27회나 공연을 했다. 2001년 10월에는 경기도 노인여가활동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취미생활을 즐기면서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인생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습니다."

지난해 9월 뒤늦게 합류해 드럼을 맡고 있는 조병진(64) 할머니는 일주일에 두 차례씩 하는 연습을 손꼽아 기다린다. 해군 군악대.전문악단 등에서 35년간 색소폰 연주자로 활약했던 조선장(77)할아버지는 엄지손가락에 멍이 들 정도로 연습에 열중하고 있다.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당당한 풍채의 조씨는 젊은 시절 주먹으로 이름을 날렸다. 1947년 전국 아마추어 권투대회 라이트급에서 준우승을 했으며, 종로를 주름잡았던 김두한씨의 오른팔 김무옥씨와 팔씨름을 겨루기도 했다는 것이다.

트럼펫을 부는 76세의 박정근 할아버지는 "고된 연습 탓에 치아가 흔들릴 정도지만 과거 실력을 회복하는 것이 목표"라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이밖에 교장 선생님을 지낸 우서규(69.전자오르간)씨, 해군 군악대 출신인 박정근(77.트럼펫)씨, 보컬을 맡고 있는 정인섭(81)씨 등이 밴드에 참여하고 있다.

서울대 음대 작곡과 출신으로 40년간 음악교사로 재직했던 악단장 최찬균(78)씨는 "앞으로는 대중음악 연주에서 탈피해 수준 높은 음악을 선보일 계획"이라며 "노인행사.복지시설뿐 아니라 대학축제 무대에도 진출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여생을 불우이웃들에게 아름다운 선율을 들려주며 보내겠다는 이들의 새해 소망은 소박하다.

전용 연습실을 마련하고 색소폰 연주자 한 명을 추가로 영입해 더욱 무르익은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다.

전익진 기자 ijj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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