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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무진 대신 셔틀 탄 교황 “괜찮아, 난 얘들이랑 갈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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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제266대 교황 프란치스코는 14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시내의 성당에서 기도를 올리는 것으로 첫 공식집무를 시작했다. 교황에 선출된 지 약 12시간이 지난 이날 아침 프란치스코는 바티칸에서 나와 산타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을 방문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새 교황과 함께 기도를 했던 루도비코 멜로 신부는 “교황은 우리에게 아버지처럼 다정하게 말을 건넸다”고 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또 콘클라베(교황 선출을 위한 추기경단 회의)가 열렸던 시스티나 성당에서 축하미사를 집전했다. 전임 교황인 베네딕토 16세도 조만간 방문할 예정이다. 598년 만에 처음으로 생존 중 교황직에서 물러난 베네딕토 16세는 로마 남부 카스텔 간돌포의 교황청 여름별장에 머물고 있다. 교황 즉위 미사는 19일 열릴 예정이다.

 앞서 프란치스코는 13일 바티칸 경내 ‘성녀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교황으로서 첫날밤을 보냈다. 추기경들이 콘클라베 기간 머무는 5층 건물 숙소인 이곳에서 교황은 추기경들과 마지막으로 저녁식사를 하며 축하와 위로를 주고받았다.

 미국 뉴욕의 티머시 돌란 추기경은 프란치스코가 겸손하고 유머와 여유가 넘치는 교황이라고 소개했다고 로이터가 전했다. 교황에 선출된 뒤 그는 성베드로대성당 발코니에서 광장에 모인 군중들에게 “추기경들은 새 지도자를 찾기 위해 거의 세상 끝까지 갔다”고 인사를 했다. 자신이 남미의 가장 남쪽에 위치한 아르헨티나 출신이란 점을 얘기한 것이다.

 프란치스코는 이후 그를 위해 준비된 리무진 차량을 마다하고 숙소행 마지막 셔틀버스를 탔다. 버스에 있던 추기경들이 깜짝 놀랐지만 프란치스코는 기사에게 “괜찮아. 나는 얘들(boys)이랑 같이 탈래”라고 말했다. 저녁식사 도중 새 교황이 축배를 들며 “하느님이 (나를 뽑은) 당신들을 용서해주길”이라고 말하자 추기경들은 폭소를 터뜨렸다고 한다. 그러고 나선 “내일은 호텔에 다시 들러서 짐도 찾고 계산도 해야 한다”고 말하며 유쾌한 식사 분위기를 이끌었다. 그는 실제로 호텔을 찾아 숙박비를 계산했다.

 프란치스코의 모국인 아르헨티나는 물론 전 세계가 교황에 축하메시지를 보냈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거리에 쏟아져 나와 경적을 울리며 기쁨을 나눴다. 성당에 몰려든 일부 신자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고른 새 교황은 가난한 사람들을 선택했다”며 “목자로서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은퇴한 검사 호르헤 안드레스 로바토는 “교황이 교회를 더욱 겸손하게 이끌어 바티칸의 모든 사치스러움을 바꾸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1986년 월드컵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신의 손’(핸들링 반칙)으로 골을 넣은 아르헨티나 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는 "그때와 같은 신의 손이 아르헨티나에 교황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는 아르헨티나 산로렌소 축구팀의 열광적인 팬이기도 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최초의 미주 출신 교황의 탄생은 남미 지역의 힘과 활기가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증가하는 것을 의미한다”며 “히스패닉계 미국인들과 함께 이 역사적인 날을 함께 기뻐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경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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