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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력적인 「유엔」 외교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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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유엔」 정치위원회는 어제 찬 38, 반 37, 기권 27표로 「캄보디아」 등 9개국이 제안했던 「남북한동시초청 안」을 한국문제 토의에 앞서 중간토의하자는 「기니」 대표의 긴급동의를 일단 성립시켰다. 공산측이 이러한 기습의 방법으로 어떻게든지 이번 총회에서는 북괴대표를 출석시켜 사실상 「두개의 한국」을 기정사실로 굳히려는 기도를 안고 있었다는 것은 충분히 예측된 것이었다. 하지만 외무당국의 그 동안의 예언과는 달리 정치위원회의 표결결과가 위와 같이 의표를 뚫었다는 것은 대단히 불쾌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에 미국대표 등이 「유엔」 총회의사규칙 1백 24조의 주지에 좇아 기왕에 확정된 의제순서를 변경하기 의해서는 단순과반수가 아니라 3분의 2 다수결로 결정해야한다는 봉쇄 책을 강구하지 않았던들, 우리는 심각한 외교적 좌절을 난데없이 경험했어야 했었을 것이다.
도대체가 이번 총회는 처음부터 그 정치적 기류가 예측을 불허 할이 만큼 유동적이었으며 예년과는 달리 공산측은 「남북한대표 동시초청」 문제에 열을 올리면서 그것을 중간토의사항으로 삼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북괴 또한 지난번에 총회가 확정시킨 의제 제94호 「한국에서의 외군철수 및 언커크해체안」 토의에 관한 한 「유엔」의 권위·권능을 인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즉 북괴는 다른 해와는 달리 금년에는 일찍이 지난 7월에 사뭇 부드럽게된 「유엔」 각서를 「유엔」 사무국에 보내고 이른바 「자립노선선언」 등을 통한 외교적 포석을 하는 등 일련의 음흉한 책동을 전개해 왔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유엔」외교는 그 어느 때보다도 도전에 찬 것이었다 할 수 있었으며 지난날과 같은 안일은 도저히 기대될 수 없던게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한층 그렇듯 충분하게 간취됐던 공산측의 책동을 억제하는데 있어서 왜 그다지도 우리의 「유엔」외교가 부실하였던 것인가를 안타깝게 여기는 것이다.
마침내 「남북한대표동시초청안」은 폐기될 전망이지만 우리는 그러한 궁여지책의 결과인 형식적 승리 뒤에 숨은 허전함을 결코 숨길 수가 없다. 물론 「유엔」 방식을 고수하려는 우리의 전통적인 「유엔」 외교의 기대는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크게 변화하는 외부정세 아래서 동요될 고비에 있어왔다는 것을 우리는 부정하지 않는다. 또한 그런 외부변화에 대해 우리가 늘 외면만을 일삼을 수도 없으며 탄력적인 대응과 전망의 견지가 필요할 것이라는 사실에도 눈을 감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현금의 「유엔」 외교는 그런 장기적 대응에 앞서 적극적으로, 아니 절대적으로 「유엔」 방식을 고수해야 할 사명을 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유야 어떻든 이번 「유엔」 총회정치위원회가 「기니」 동의를 일단 성립시켰던 바에 대해 우리의 「유엔」 외교는 심각한 반성이 있어 마땅하다.
아직도 의제 제94호와 관련된 또 하나의 도전과 맞서고 있는 우리의 「유엔」 외교는 하루빨리 유동을 거듭하는 정세발전 속에서 단기적·장기적 전망을 고루 갖추고 있으면서 최대의 기능을 발휘하도록 돼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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