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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 상자와 메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세기의 철인 「아베베」가 복부 수술을 받았다는 뉴스는 세계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다. 「도꾜·올림픽」을 한달 앞둔 바로 그 때였다. 비록 황장 수술이긴 했지만 여드름을 짜는 정도와는 다르기 때문이었다.
그리나 아베베의 철인다움은 변함이 없었다. 그는 기관차처럼 달려 다시 계관을 썼다. 골인을 하고 나서도 50리는 더 달릴 수 있다고 가슴을 펴 보이는 그였다. 도꾜의 승리는 첫 번도 아닌 두번째 맞는 것이었다.
그의 일상 메뉴는 극히 일상적인 것일 뿐, 특별히 열량 있는 음식만을 섭취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무슨 마력을 행사하는 것은 더구나 아니었다. 아베베는 묵묵히 인간이 갖는 의지의 승리를 구가할 뿐이었다.
그는 담배도 술도, 그 어떤 유혹도 거절했다. 축배마저 사절했다. 아니, 인간은 엄청난 성취 뒤엔 의식 부재의 허탈과 피곤과 고독 같은 것을 오수처럼 느끼기 마련이다. 그것이 인지상정이다.
아베베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언제나 독주 같은 의지와 신념과 한결 같은 긴장 속에 머물려 있었다. 한갓 「나르시시즘」따위는 경멸하고 만 것이다. 승리의 비방은 마술 아닌 바로 그런 강인함이었다.
방콕에서 열리는 아시안 경기대회에 우리의 대단원 3백28명중 제 1·2진이 30일 떠났다. 지금 오지랖 넓게 그 주변의 「고십」이나 꺼낼 용기는 없다.
이처럼 대단원이 국제 규모의 대회에 참석하는 것은 단순히 외유에나 뜻이 있는 것은 아니다는 일침을 놓고 싶을 따름이다. 이런 대회 때마다 메달을 메고 와야 할 어깨엔 판도라의 상자 같은 가방이나 주렁주렁 매달리던 일들이 또 다시 연상되기 때문에 하는 얘기다. 승리는 의지다. 의지는 생명력을 저장하는 인간의 조건이기도 하다. 아베베의 불사조 정신은 그 텍스트가 아닐까? 「방콕」대회에는 참가와 승리에 함께 뜻이 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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