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아페이, 코리안드림 '단독 드리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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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소년 장아페이(18.蔣亞菲.사진)는 2년 전 혈혈단신 한국을 찾아왔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당시 TV에서 본 한국 축구대표팀의 '투혼'이 그를 사로잡아 버렸다.

한국에 오기 위해 그는 산둥성 공무원인 아버지에게 매달렸다. 당시 중국 프로축구 산둥 루넝(魯能) 유소년팀에서 촉망받는 선수였기에 부친은 "잘 생각해보라"며 만류했다. 그래도 자식을 이기는 부모는 없었다.

한국에 연고가 없던 장아페이는 2000년 산둥 감독을 지낸 김정남 울산 현대 감독을 떠올렸다. 수소문 끝에 김감독과 연락이 닿아 연습생 신분으로 2001년 5월 한국에 왔다. 한국에 온 지 2년. 이달 초 장아페이는 울산구단과 정식 입단계약을 했다. 계약금 2천만원에 연봉 1천2백만원.

드디어 한국 프로축구 제1호 중국 출신 선수가 된 것이다.

그의 우상은 수마오젠.리샤오펑 등 중국 대표선수들이었지만 프랑스 월드컵을 계기로 홍명보.유상철로 바뀌었다. 지난해 9월 유상철이 울산에 입단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자신의 우상과 함께 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지난해 말 발가락을 다친 장아페이는 요즘 재활 중이다. 칼바람이 불던 24일 울산 서부구장에서 가볍게 뛰던 그의 시선은 훈련 중이던 유상철에 고정됐다.

동년배인 이호.송한복.최우석 등 한국 청소년대표 출신 선수들이 유상철과 함께 뛰는 모습을 보며 이젠 자신도 그 안에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왼발잡이인 그의 포지션은 왼쪽 미드필더. 한국 프로축구선수의 꿈을 이룬 그의 다음 목표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때 오성홍기(중국 국기)를 가슴에 다는 것이다.

김감독은 "장아페이의 장점은 시야가 넓은 데다 한국의 제 또래 선수들과 달리 머리를 쓰는 축구를 한다는 점"이라며 "타향이라 그런지 눈치를 보는 등 아직 적극성이 부족하지만 근성과 투쟁력까지 붙으면 정말 좋은 선수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감독은 "올 시즌 기회를 봐 장아페이를 정식경기에 내보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성공해도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18세 소년의 '코리안 드림'은 진행 중이다.

울산=장혜수 기자 hsc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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