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도핑 파수꾼들 월드컵 약물 '그물수비'

중앙일보

입력

"경기 며칠 전에 자신의 피를 뽑아 놓았다가 경기에 임박해 다시 재수혈하는 선수를 잡는 방법을 찾아봅시다."

"프랑스와 호주에서 개발하고 있는 조혈제 복용 여부를 검사하는 기법도 조기에 개발할 필요가 있어요."

스포츠 선수들의 약물 복용 파수꾼인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도핑컨트롤센터의 회의 내용 중 일부다.

다가올 월드컵과 아시안게임에 앞서 날로 지능화하는 선수들의 금지약물 복용과 싸우는 장외 월드컵이 벌써 시작된 것이다. 이 곳은 88올림픽 때 '인간 탄환' 캐나다 벤 존슨 선수의 약물 복용을 잡아내기도 한 현장.

이 센터 명승운(43)박사는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내려는 욕심에 의사들의 조언까지 받아 약물을 복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선수들이 사용하는 약물도 다양하고,수법도 고도화하고 있다. 88올림픽 때 72종에 불과했던 금지 약물은 현재 1백40종으로 늘었다.

선수들 사이에 가장 많이 쓰이는 것 중 하나인 남성 호르몬. 이를 복용했는지 여부를 체내의 남성.여성 호르몬의 비율을 검사해 알아낸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선수들은 두 가지 호르몬을 체내 비율에 맞춰 투여하는 방법을 써 왔다.

한 때 이 수법에 각국의 도핑컨트롤센터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그러나 요즘은 천연 호르몬과 인공 호르몬간에 방사성동위원소가 다르다는 점을 이용해 잡아낸다.

미리 피를 뽑아 놨다 재수혈하는 수법은 금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색출해 내기는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인공화합물이 하나도 섞이지 않은 자신의 피를 다시 수혈하기 때문이다. 피가 많아지면 산소를 많이 받아들일 수 있어 지구력 등이 생긴다.

조혈제도 마찬가지 효과를 낸다. 일부 국가에서는 국제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토종 약물을 발굴, 도핑컨트롤센터의 눈을 피해가기도 한다. 이외에 협심증약은 사격이나 양궁선수에겐 호흡 조절제로, 천식약은 각 종목 선수의 근육강화제로 둔갑하기도 한다. 커피에 많은 카페인도 과량이면 걸린다.

2002월드컵에는 민간단체인 세계반도핑기구(WADA)가 국제축구연맹(FIFA)과는 별도로 선수들의 약물 복용여부를 검사하게 돼 있다. 이에 따라 약물복용과 감시자간의 쫓고 쫓기는 싸움은 어느 때보다 뜨거울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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