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치매에 미친 의사 "예쁜 치매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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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 의대 삼성서울병원 나덕렬 교수가 13일 연구실에서 바이엘임상의학상 수상 소식을 듣고 뇌 모형을 만지고 있다. [사진 삼성서울병원]

남들이 거들떠보지 않던 뇌에 매달린 의대생이 있었다. 그는 경기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의대에 입학하자마자 뇌에 빠져들었다. 신경계 관련 수업시간에 남들은 하품을 했지만 그는 그리 재미있을 수 없었다. 학교 졸업 후 전공과목을 신경과로 택했다. 1970년대에서 80년대 초반 인기 없는 전공이었다. 돈벌이가 괜찮은 성형외과·소아과·정형외과가 인기 과였다.

 성균관대 의대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나덕렬(57) 교수. 그는 신경과 레지던트(전공의) 시절에 또 한 번 남들이 가지 않는 길로 들어선다. 뇌 피질이 손상돼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환자, 알아들어도 말을 못하는 환자, 시계를 반쪽만 그리는 환자 등을 만나면서다. 뇌의 인지기능 연구와 치매에 빠져들었다. 당시 신경과의 주요 관심사는 뇌졸중과 간질이었다.

 그가 치매를 전공하겠다고 하자 부인조차 “왜 남들이 하지 않는 것만 하느냐”고 불평을 토로했다. 아랑곳하지 않고 17년 동안 치매에 미쳤다. 어느새 치매 선구자이자 권위자로 우뚝 섰다. 나 교수는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13일 대한의학회(회장 김동익)와 바이엘(대표 노상경)이 공동 주관하는 바이엘임상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 상은 한국 의료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우수한 연구 업적을 지닌 학자에게 매년 주는 권위 있는 상이다. 올해로 9회째. 이 상은 탁월한 칼잡이(외과의사)나 내과 의사들의 몫이었다. 치매 전문의가 받은 것은 이례적이다. 나 교수는 “나 같은 치매 의사가 상을 받을 줄 몰랐다”고 말했다.

 바이엘임상의학상 운영위원장인 한만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나 교수는 치매 진단 검사도구와 진료지침 등을 개발하고 보급함으로써 국내 치매 환자의 진단과 치료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김동익 의학회 회장은 “치매를 바르게 인식하고 예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말했다.

 그의 업적 중 가장 제일로 손꼽히는 것은 한국형 신경심리검사도구(SNSB: Seoul Neuropsychological Screening Battery)를 개발한 것이다. 치매환자의 인지기능을 평가하는 도구이다. 94년 미국 유학에서 돌아와서 만들었다. 그 전까지는 진단 도구가 없었다. 현재는 한국 표준으로 자리잡았다.

 나 교수는 SNSB를 이용해 100편이 넘는 논문을 쏟아냈다. 지금까지 발표한 논문을 모두 합치면 200편에 육박한다. 나 교수는 학문에만 골몰한 게 아니다. 일반인들이 치매를 알기 쉽게 알렸다. 뇌 관련 저술활동을 통해서다. 『앞쪽형 인간』 『뇌美인』 등 2권의 교양서를 냈고, 상·중·하로 이뤄진 『뇌선생의 건강 두뇌교실』이라는 치매예방 문제집도 냈다. 노인용 치매예방 게임기를 개발했다. 후학양성에도 충실해 학생들이 선정한 베스트티처 상을 받기도 했다.

 나 교수는 83년 결혼하면서부터 장모를 모시고 산다. 그런 장모가 2005년(당시 79세) 치매에 걸렸다. 가족들에게 장모가 어떻게 변해갈지 등을 설명했다. 장모를 보살피면서 치매 가족의 고통을 이해하게 됐고 환자와 보호자를 대하는 태도를 다잡게 됐다.

 그는 ‘예쁜 치매’를 강조한다. 치매 환자의 30%가 이런 경우다. 문제행동(욕설·폭력 등)을 하지 않고 남들에게 폐를 덜 끼치는 환자를 말한다. 예쁜 치매가 되려면 항상 감사하고 긍정하는 마음을 가져야 ‘감사 신경망’ ‘긍정 신경망’이 두터워진다. 분노와 미움을 버리고 부부관계나 주변 인간관계를 좋게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제 정년이 10년 남았습니다. 그때까지 나도 기쁘고, 환자도 기쁜 논문 한 편을 쓰는 게 제 간절한 꿈입니다.”

 나 교수의 꿈은 치매 완치다. 그래서 퇴직 전에 완치법을 담은 논문을 쓰고 싶어한다.

 나 교수는 의사부부다. 서울대 의대 동기인 부인 채인영(57)씨도 꿈을 설파하는 소아정신과 개업의다. 채씨는 최근 『꿈PD 채인영입니다』이라는 책을 냈다. 학생들의 꿈을 찾는 얘기를 담고 있다. 자녀는 1남1녀.

장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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