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고전'으로 짚는 2003년] 4. 정보화의 미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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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물결/앨빈 토플러 지음/한국경제신문, 1989년 출간
디지털이다/니컬러스 네그로폰테 지음/커뮤니케이션북스, 1995년 출간

인터넷은 우리사회 정보화의 바로미터다.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우리의 인터넷 전개사는 그 자체로 경이롭다. 10년도 채 안돼 인터넷 사용자가 인구 절반을 넘고 초고속통신망에 가입한 사람만도 1천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그 인터넷이 결국 일을 냈다. 한 편의 드라마같았던 2002년 대선의 희비쌍곡선이 엇갈리는 길목에 자리잡고 있던 것은 다름 아닌 인터넷이었다. 인터넷을 장악한 세력에게 대선이 환희로 다가왔다면, 인터넷 바깥을 겉돌던 세력에 대선결과는 악몽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뿐인가? 이른바 메이저급 종이신문들이 인터넷신문에 '어퍼 컷'을 맞고 휘청거리는 모습이 심심치않게 나타나는가하면, 오프라인의 기성정당들이 인터넷에 올려진 '살생부' 하나로 홍역을 치르는 가운데 네티즌들로 결성된 인터넷 정당이 기존 오프라인 거대정당을 압박하기에 이르렀다. 또 인터넷에서의 한마디 제안이 광화문을 촛불로 뒤덮이게 만들었다.

더구나 대선 이후 드러나는 이른바 2030세대와 5060세대 간의 묘한 갈등구도에도 어김없이 인터넷이 또아리를 틀고 있다. 결국 인터넷에 접속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간의 간격이 사회적.정치적으로 현실화된 셈이다.

앨빈 토플러는 80년에 펴낸 '제3물결'을 통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들을 정확히 예측했다. 토플러에 따르면 우리는 "낡은 문명의 마지막 세대이자 새로운 문명의 최초 세대다."(32쪽)

2003년의 한국사회에서 너나 할 것 없이 경험하는 개인적 혼란과 고뇌,그리고 방향감각의 상실 등은 단순히 이념적 좌표의 흔들림이나 사회경제적 지위의 변동에서 유발하는 것이기보다는 이른바 '제2물결' 문명과 '제3물결' 문명간의 갈등과 모순을 직접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는 점이 토플러식 진단의 핵심이다.

토플러의 말처럼 "우리들 대부분은 부지불식간에 이미 이 새로운 문명에 저항하거나 아니면 그 창조에 참여하고 있다."(26쪽)

앨빈 토플러는 '제3물결'을 통해 농업사회와 산업사회를 거쳐 정보사회의 물결이 도래함을 알려주었다. 토플러의 '제3물결'은 '인터넷'이란 표현 자체가 없던 시절에 나온 책이지만'전혀 새로운 사회적 기억의 단계'라는 말로 그것의 출현을 예시하고 있었다.

노암 촘스키가 '데이터스피어(datasphere)'라고 말하고, 더글러스 러시코프가 '미디어스페이스(mediaspace)'라고 말했던 것들이 하나로 묶여진 형태의 인터넷에서 우리는 '전혀 새로운 사회적 기억의 단계'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은 사람들로 하여금 모든 것에 대한 기억을 상실하지 않은 채 살아가게 만들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잊혀진다는 것은 이미 옛 일이 되어버렸다. 인터넷에 '공유된 기억(shared memory)'으로 일단 남겨진 흔적들은 결코 지워지지 않은 채 누군가의 호출만이 있기를 기다리고 있다.

토플러가 2000년 3월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특정한 목표를 가진 인터넷 동호인 그룹이 모여 막강한 정치 파워를 발휘할지 모른다. 이들은 한 가지 목적으로 만나 목적 달성 후 해산하는 한시적인 정당의 모습을 가질 것이다." 언뜻 '노사모'가 연상되지 않는가?

혹자는 인터넷이 우리사회에 점령군처럼 진주했다고 말한다. 이제는 인터넷을 지배하는 자가 곧 세상을 지배한다는 생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하지만 토플러의 말처럼 "인터넷이 모든 기존 조직과 관행, 사고, 경영스타일을 뒤엎어버리는 무시무시한 혁명은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 현재는 지식 디지털 혁명인 제3의 물결 중 첫번째 단계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우리가 마주하는 2003년은 여전히 '디지털 창세기'일 뿐이다. 하지만 MIT 미디어랩의 소장이자 '디지털이다'의 저자인 니컬러스 네그로폰테가 단언했던 것처럼"아톰(atom)에서 비트(bit)로 변화하는 추세는 돌이킬 수도 막을 수도 없다."(6쪽)

'아톰'이란 본래 물리적 세계의 최소단위로서의 원자를 의미하지만 이것은 곧 아날로 그 세계를 구성하는 기본단위의 의미로 그 외연이 넓어져 마침내는 아날로그 세계 그 자체를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비트'역시 정보의 DNA를 구성하는 전자적 세계의 최소단위라는 뜻이지만 이내 디지털 세계 그 자체를 지칭하게 되었다. 결국 디지털화는 불가역적이다. 돌이켜 아날로그로 회귀시킬 수 없다.

하지만 디지털의 세계가 경직된 '테크놀러지의 늪'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기우다. 디지털의 세계는 '하이테크'에 머물지 않고 '하이터치'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고(高)기술'이 아닌 '고(高)감성'이 디지털 시대에 더많이 요청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인터넷은 더 이상 출구없는 가상공간이 아니다. 우리는 이 경이롭고 새로운 인터페이스를 경험하는 첫번째 세대로 기록될 것이다.

아울러 "네트워크의 진정한 가치는 정보 그 자체보다 공동체에 있다"(173)는 네그로폰테의 말은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적지않다.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새로운 '느낌의 공동체'를 창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역시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다.욕설과 비방, 그리고 음모와 음란으로 혼탁해진 인터넷은 결국 우리의 새로운 삶터인 느낌의 공동체를 오염시킨다. 2003년 한국사회의 정보화 과제는 바로 '인터넷생태계'를 자율적으로 청소하며'클린 인터넷'의 원년을 만드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정진홍(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atombit@ne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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