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하고 용기있는 소년과 함께 하는 여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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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쉬』는 우리를 두 개의 낯선 세계로 인도한다. 그건 시각 장애인이 겪는 어둠의 세계, 그리고 티베트라는 이방의 나라다. 거기로 들어가는 방법 또한 두 가지다. 하나는 타쉬로부터 전해 듣는 소리와 냄새가 살아 숨쉬는 이야기들이고, 또 하나는 티베트의 색깔이 그대로 재현된 사진들을 통해서다. 비록 앞을 볼 순 없지만, 그것들은 타쉬의 영혼 속에서 여전히 빛나고 있다.

타쉬는 어느날 심한 고열에 시달리다 꿈도 없이 깊은 잠에서 깨어난다. 주위는 온통 어둡고, 느껴지는 건 차고 거친 집의 흙바닥과, 타쉬의 체온이 남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양탄자,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어린아이들의 노는 소리뿐이었다. 그는 아무 것도 볼 수 없고 단지 느낄 수만 있는 세계에 남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곧 그 세계가 결코 어둡지 만은 않음을 깨닫는다.
타쉬는 마을 어귀에 앉아 일하러 나가는 사람들의 소리를 들으면서 가축들을 만나고 마을 여기 저기를 찾아 다니면서 돌, 언덕, 길과 만난다. 타쉬는 세상이 그에게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 나서면서 자신의 세계를 넓혀가는 용기 있는 소년이다.

게다가 타쉬는 풍부한 상상력을 가지고 있다. 염소들의 종소리, 찰랑대는 개울물 소리, 물이 흐를 때 가벼이 서로 스치는 조약돌 부딪치는 소리까지 무엇 하나 빼놓지 않고 듣는 것들은 그가 지어내는 이야기의 원천이 된다. 오두막집 화롯가에 아이들이 모여 앉으면 타쉬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지어 그들을 사로잡는다.

타쉬의 이야기에 시간가는 줄 모르는 아이들처럼 우리들 역시 타쉬가 일깨워주는 소리와 냄새와 감촉에 의해 그 동안 너무나 현란하고 자극적이었던 것들로 마비되었던 감각들이 서서히 깨어나는 걸 느끼게 된다. 그건 달라이 라마의 나라로만 어렴풋이 알고 있는 티베트라는 나라를 생생하게 경험하는 일이다.

앞을 볼 수 없게 된 날 아침에 타쉬가 일어나 손으로 더듬고 느끼는 것을 따라가면 티베트의 전형적인 집안 형태에 대해 짐작할 수 있다. 또 타쉬가 마을 어귀에서 만나는 소리와 냄새들은 티베트에서 가장 중요한 가축들이 염소, 당나귀, 야크 임을 알려준다. 이 밖에도 타쉬가 장애인학교를 찾아가는 길 위에서 접하는 티베트의 도시 모습은 순박한 시골 소년 타쉬의 귀와 코를 통해 유머러스하게 전달된다.

타쉬가 소리와 냄새로 다시 알아가는 티베트를 우리는 사진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 눈이 시리도록 청명한 하늘, 거기에 닿을 듯 펼쳐진 눈 덮인 산, 넓게 펼쳐진 초원, 하얗다 못해 푸른 빛을 띠는 소금이 고여 있는 호수 등등.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 산은 신비하다 못해 보는 사람을 숙연하게 만든다. '하늘의 언덕'이라는 뜻을 가진 타쉬의 마을 이름 '나므리'처럼 사진으로 보는 티베트 문자나 점자 역시 신비하고 깊은 의미가 담긴 듯 보인다.

그러나 이런 막연한 이국적 느낌은 티베트의 마을과 그 구석에 자리하고 앉은 누렁이 개에 이르면 어느새 친근함과 반가움으로 변한다. 그리고 색색의 옷을 입은 유목민과 말들, 강한 햇빛과 건조하고 차가운 바람에 가무잡잡해진 티베트인들의 얼굴을 볼 때는 자신도 모르게 빙그레 웃음이 번진다.

이 책은 시각장애인의 세계와 티베트라는 미지의 세계로 타쉬와 함께 나서는 여정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여행이 끝난 후, 시각장애인은 어둡고 답답하기만 세계에 사는 불쌍한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이 꿈을 꾸고 그 꿈을 실현해 나갈 수 있는 힘을 지닌 사람들임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티베트는 춥고 아름답기 만한 먼 이국이 아니다. 아름답지만 힘든 자연환경 속에서도 나름대로의 문화와 풍습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세상이다.

먼지로 꽉 차 빡빡한 듯 했던 눈, 코, 귀가 환하게 열리고 맑아졌다면, 마음 한 구석이 훈훈해졌다면, 새로운 것을 대할 때 두려움보다는 호기심에 차 용감하게 다가서게 되었다면, 그것은 타쉬와 함께 여행했기 때문이다. (윤정윤/ 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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