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범죄 추적하는 사이버 경찰들

중앙일보

입력

수상한 거래를 실시간으로 감지하는 소프트웨어들 속속 개발
알 카에다의 테러자금 색출 등에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

범죄자들은 표가 나게 마련이다. 도난당한 신용카드로 자동차에 연료를 가득 채우고 값비싼 보석과 최신 컴퓨터를 구입하는 등 짧은 시간 안에 미친 듯이 물건을 사들이는 사람은 소매치기범일 가능성이 있다. 자신의 카드로 쇼핑할 때도 짧은 시간에 많은 물건을 사들일 경우 종종 카드 회사로부터 신원 확인 요청을 받게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런 경계 조치가 가능한 것은 수백만개의 신용카드 계좌를 감시하는 소프트웨어 덕분이다.

고객의 행동 패턴을 여느 때와 비교해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있으면 위험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근년 들어서는 수상쩍은 거래를 실시간으로 감지하는 소프트웨어까지 개발됐다. 현재 미국과 對테러 동맹이 주도하고 있는 테러리스트 조직망과의 전쟁에서는 그보다 더 정교한 소프트웨어들이 이용되고 있다. 알 카에다의 자금원 색출작전이 전개되면서 전세계 금융기관들은 적극적인 협조를 요구받고 있다.

은행들은 오래 전부터 뇌물수수·내부거래·돈세탁 및 기타 범죄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측되는 거래를 보고하도록 요구받아왔다. 9·11 테러참사 이후 미국에서 통과된 새 법안에 따르면 이런 의무사항은 증권 브로커와 보험회사 및 기타 금융기관에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하루에 수천만건이나 되는 거래를 어떻게 일일이 조사할 것인가? 수백만달러를 호가하는 값비싼 소프트웨어를 이용하면 가능하지만 과연 테러리스트들을 체포하는 데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금융범죄와의 전쟁은 역사적으로 조직범죄와 마약거래, 특히 마약자금의 세탁에 초점을 맞춰왔다. 1970년대에 미국 정부는 각 금융기관에 1만달러 이상의 현금 거래를 보고하도록 요구했다. 그러나 범죄자들이 이 규정에 걸리지 않도록 거래 단위를 작은 액수로 나눠 보내는 방법을 사용하자 당국은 의무보고 액수를 더 낮췄다. 몇년 후 미국 정부는 더 엄격한 ‘고객숙지’(know your customer) 규정을 제정하려 했지만 소비자 사생활 보호단체와 금융업계 로비스트들의 거센 반대로 무산됐다.

그러나 ‘은행들이 불법 거래를 막기 위해 한층 더 노력해야 한다’는 당국의 뜻은 전달됐다. 이런 노력의 필요성은 1999년 러시아의 은행들이 뉴욕 은행을 통해 돈세탁을 해온 것이 발각된 이후 더욱 절실해졌다. 영국 웨일스에 있는 카디프大의 범죄학자 마이클 레비는 “기술적인 해결책이 꼭 필요했다”고 말했다.
일부 은행들은 범죄활동과 연관된 것으로 알려진 특정 형태의 계좌이동을 감시하는 소프트웨어를 사용한다.

그런 ‘규칙기반’(rules based) 시스템들은 방대한 양의 데이터 검사를 가능하게 하지만 사후적(事後的)이고 수동적이라는 단점이 있다. 세계적인 컨설팅 업체 액센추어의 피터 C. 스톡먼은 “범죄자들은 이 시스템을 사용하는 금융기관들이 무엇을 감시하는지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고 말했다.
보다 최근에는 자금이 넉넉한 은행들이 더 능동적인 ‘적응형’(adaptive) 프로그램을 채택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개발된 다양한 인공지능 기술이 적용된 프로그램들이다.

뉴럴 네트워크(neural netwok)는 인간 신경회로의 작용을 본뜬 프로그래밍 기술로 컴퓨터가 새로운 행동 패턴을 인식하고, 경험으로부터 새로운 연관성을 유추하는 방법을 터득해 나가도록 한 것이다. 링크 분석(link analysis)은 수많은 데이터간의 상관관계를 평가하는 수학적 기법이다. 이런 프로그램들 덕분에 컴퓨터는 마치 형사처럼 독립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갖게 됐다.

일례로 독일에 있는 어떤 회사의 계좌와 수단의 한 회사 계좌 사이의 거래를 감시할 경우 적응형 프로그램은 두 계좌의 돈이 비슷한 성격의 입금 기록을 가진 제3의 계좌로 송금될 때 은행측에 경보를 발할 수 있다. 현재 이런 프로그램을 취급하는 회사는 영국의 서치스페이스社와 네덜란드의 넷이코노미社, 미국의 맨터스社 등이다.

서치스페이스社의 소프트웨어는 영국의 스코틀랜드 왕립은행·바클레이즈 은행 등의 1억개 계좌를 관리한다. 그 프로그램은 15파운드짜리 소액거래 기록이 많은 한 계좌를 정지시킨 적이 있다. 그 계좌는 불법 비디오 판매에 연관된 것으로 밝혀졌다.

적응형 소프트웨어의 장점은 특정 거래에 대한 감시의 강도를 높이는 동시에 다른 거래에 대해서는 감시의 강도를 낮춤으로써 조사가 엉뚱한 방향으로 빠질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수십개국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조직간의 소규모 거래가 포함돼 있을 것으로 추측되는 알 카에다의 자금 흐름을 추적하는 데는 필수적인 기술이다.

돈세탁방지 금융대책기구인 FATF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는 국가(나우루 공화국·필리핀·러시아 등)에 드나드는 돈, 환거래은행으로 송금되는 돈, 또는 이슬람 자선단체 등 수상쩍은 기관들로 송금되는 돈에 대해 집중적인 감시를 할 수 있는 것이다. 필요한 경우에는 특정 개인에 대한 감시를 강화할 수도 있다.

이런 소프트웨어들이 금융범죄 방지에 과연 효과가 있을지 단정을 내리기는 아직 이르다. 넷이코노미社의 소프트웨어를 3년 동안 사용해온 네덜란드의 ING 은행은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통계자료의 제시는 거부했다. 경찰의 금융범죄와의 전쟁 기록은 그다지 고무적이지 않다.

그러나 런던 고등법학 연구소의 배리 라이더 소장은 “첨단기술이 범인 검거를 위한 보다 나은 환경을 창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은행과 경찰이 적응형 소프트웨어의 이용에 익숙해질수록 테러리스트들이 숨을 곳은 줄어들 것이다.
With Friso Endt in The Hague

Rana Foroohar 기자
기사제공 : 뉴스위크 한국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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