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사전예약제 '신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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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교보문고는 박경리씨의 대하소설 『토지』전집(나남.전21권) 을 예약 판매하며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사전 예약제에 대한 인지도가 그다지 높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전문서 등 일부 책들이 예약제로 팔리기는 했지만 보편적인 마케팅 수단으로 자리 잡지는 못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밖이었다. 인터넷 교보문고에서만 지난 12일까지 보름동안 약 3백50질을 팔았다.

교보는 이번 성공에 힘입어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신화 2권』도 예약 판매할 계획이다.

『토지』의 경우 서울문고와 인터넷 서점 알라딘.인터파크를 통해 판매한 분까지 합치면 8백~9백질이 팔렸다. 정가 19만9천5백원의 고가 전집이 예상보다 많이 팔린 데는 무엇보다 작가의 지명도 덕이 컸다. 또 사전예약제라 할인율이 높아 독자의 관심을 쉽게 끌 수 있었다.

미국의 경우 사전 예약제는 이미 출판 시장의 마케팅 수단으로 자리 잡은지 오래다. 지난주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는 『강을 거슬러 오르는 고양이(The Cat Who Went up the Creek) 』라는 추리소설이 차지했다.

그러나 이 책은 아직 서점에 나오지 않았다. 일부 책 내용이 아마존에 서비스된 것이 전부다. 올해 출판 예정으로만 알려진 '해리포터'시리즈 5권도 벌써부터 예약이 밀려들고 있다.

이런 시스템이 가능한 것은 기획.홍보.판매의 삼박자가 잘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미국 출판사들은 기획하고 있는 책 내용을 대략 출간 한달전쯤부터 뉴욕타임스 북리뷰, 아마존 사이트 등을 통해 보여준다. 예고한 출간 날짜가 되면 책이 자동 발송돼 독자들은 따끈따끈한 신간을 받아볼 수 있다.

이같은 사전 예약제를 하면 출판사는 제작비용을 가늠할 수 있고, 주 고객층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 마케팅 전략 짜기가 손쉽다. 또 책을 찍고 쌓아두는 물류 비용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사전예약제는 음반의 경우에서나 두드러질 뿐 출판 시장에서는 아직 시험단계에 불과하다. 출간 예정 도서의 내용을 인터넷을 통해 '맛보기'로 보여주고 있지만 예약 판매는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출판사들이 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출간 며칠전까지 책 제목과 가격을 정하지 못하는 등 책 정보가 부실한 것도 사전 예약제를 힘들게 하는 요인이다.

인터넷 서점 예스24의 김세라 해외도서팀장은 "주문 도서 발송만도 엄청난 작업이라 사전 예약까지 받으면 시스템의 과부하가 걸릴 수 있다. 이런 관리상의 문제를 해결해 올해안에 예약제를 실시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원하는 신간을 가장 먼저 받아보는 것 뿐 아니라 원하는 내용을 발췌해 '나만의 책'을 만드는 주문 출판까지 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홍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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