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서비스도 구멍가게도… 협동조합 전성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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퀵서비스 기사에겐 휴일이 없다. ‘콜’을 하나라도 더 받기 위해 연중무휴로 대기한다. 10일 서울 영등포 사무실 앞에 모인 한국퀵서비스협동조합 회원들. 왼쪽부터 경력 15년차 봉병갑 영업이사, 소학영씨, 윤현웅 상무, 윤정식씨. 직함과 관계없이 모두 현장을 누빈다. [김성룡 기자]

퀵서비스 기사 7년차인 정병구(45)씨는 올 1월 동료 기사 27명과 함께 서울 영등포 철제상가 한 건물에서 협동조합을 발족했다. 이름은 ‘한국퀵서비스협동조합’. 조합원 1인당 10만원씩 출자해 만든 소박한 협동조합이다. 퀵서비스 연락시스템을 직접 운영해 수입 중 기사 몫을 늘리고, 스스로의 권익도 보호하자는 취지다. 퀵서비스 요금이 1만원이라면 기존엔 2300원가량을 연락회사 측에 수수료로 내야 했지만, 이제는 1000원 정도만 내면 된다. 기사들의 한 달 수입은 30만원가량 늘었다.

정씨는 “조합원이 발로 뛰면서 홍보하고 운영진은 최소 실비만 받으며 활동한다”며 “기름값 상승과 경쟁 격화 등 쉽지 않은 여건을 조합원들의 책임감과 보람으로 이겨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협동조합 전성시대가 열리고 있다. 10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된 이후 100일간 전국에서 647개 조합이 설립됐다. 하루 6개 넘는 조합이 새로 생겨났다. 형태는 다양하다. 가장 흔한 건 조합원들이 출자해 회사처럼 운영되는 사업자형 협동조합이지만 공익적 성격을 띤 사회적 협동조합 등 여러 형태의 조합이 생겨나고 있다. 조합 설립자도 경쟁력이 약한 소상공인이나 사회적 약자, 공동체 형태의 지역주민 등 가지각색이다.

  지난달 20일 발족한 강원도의 정선아리랑시장협동조합은 전통시장이 송두리째 협동조합으로 변신한 경우다. 정선 5일장 상인회원 200여 명 전원이 조합원으로 가입했다. 출자금을 활용해 산나물 등 지역 농·특산물을 공동 구매해 소비자들에게 값싸게 팔아 경쟁력을 높이려 한다. 지역 특산물인 곤드레 나물을 활용한 삼각 김밥 등 식품가공사업도 추진한다. 이 조합은 정선 5일장에서 과일가게를 운영해온 이윤광(52)씨가 주도했다. 그는“시장 이름이 전국에 많이 알려져 있지만 내실이 없었다”며 “자체 수익사업으로 자생력을 키워보자는 뜻에서 협동조합으로 탈바꿈했다”고 설명했다.

 부산의 ‘골목가게협동조합’은 구멍가게 160개가 모인 단체다. 지난해 12월 조합 설립을 주도한 장남권씨는 그간 골목상권을 위협해온 기업형 수퍼마켓(SSM)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조합원이 공동으로 물품을 구매해 원가를 낮추고,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해 경쟁력을 키운다는 목표다.

협동조합은 시장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모델로 주목받는다. 주주가 주인인 기업이 직원을 고용해 월급을 주고 이윤을 남기는 방식이 기존 자본주의 경제 방식이라면, 협동조합은 조합원이 주인이 돼 경제활동을 하고 이익을 나눠가진다. 주식회사가 아니다 보니 의사결정도 사람 위주로 이뤄진다. 의결권은 지분에 비례해 주어지지 않고, 1인 1표로 행사된다.

협동조합 열기는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법이 만들어진 첫 달인 지난해 12월 136건의 신청이 들어왔다. 올 1월엔 224건, 2월엔 248건으로 가파른 상승세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올 연말까지 최대 3386개의 협동조합이 만들어지고 5년 내 1만 개를 돌파할 것으로 내다본다. 재정부 관계자는 “대기업과 영세상인으로 나뉜 사업생태계 양극화를 협동조합이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며 “보다 원활하게 설립하고 운영할 수 있도록 법·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글=최준호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협동조합은=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조합원이 모여 만든 사업조직. 농협·수협·축협·신협·생협 등이 있었지만 이는 개별 특별법에 의한 협동조합이다. 지난해 12월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되며 법으로 막혔던 협동조합 설립 요건이 크게 완화됐다. 3억원 이상이던 출자금 제한도 없어졌고, 200명 이상이던 설립 동의자도 5명으로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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