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는 과학기술 강국 … 한국과 우주 분야 협력 원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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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호 14면

‘남한의 기술과 자본, 북한의 노동력과 지하자원을 결합하면 남북 모두 잘살 수 있다.’

주느비에브 피오라소 프랑스 고등교육연구부 장관 인터뷰

 남북 모두에 큰 이익을 안겨줄 구상이다. 언젠가는 실현될 것이다. 현재로서는 북한이 이런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도대체 기술이 앞서면 얼마나 앞섰고 돈이 많으면 얼마나 많길래….” 오히려 한국의 기술과 자본을 환영하는 곳은 프랑스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에 주느비에브 피오라소(59·사진) 고등교육연구부 장관을 파견했다. 프랑스의 기초 과학과 한국의 기술 연구력을 융합해 시너지 효과를 보자는 메시지를 다시금 강조하기 위해서다.

 피오라소 장관이 담당하고 있는 고등교육연구부는 우리 새 정부가 역점을 두고 있는 미래창조과학부와 기능이 겹친다. 국회의원이기도 한 그가 정치적으로 성장한 그르노블은 박 대통령이 프랑스 유학 시절 공부한 곳이다.

 프랑스 내각엔 모두 34명의 장관이 있다. 이 중 피오라소 장관을 포함해 3명이 교육 분야를 맡고 있다. 양국 과학·기술·교육 협력의 오늘과 내일을 따져보기 위해 최근 프랑스 대사관에서 피오라소 장관을 인터뷰했다. 다음은 인터뷰 요지.

피오라소 장관이 한국에서 공부하는 프랑스 유학생들과 간담회를 마친 후 기념사진을 찍었다.

 -대통령 취임식에서 받은 인상은.
 “감동적이었다. 신임 대통령이 여성이라 기뻤고 올랑드 대통령을 대신해 취임식에 참석하게 돼 영광이었다. 여러 세대와 문화가 어우러진 취임식이 흥미로웠다. 취임사는 강력하면서도 균형이 잡혀 있었다. 전통 가옥과 최신 건축이 공존하는 서울이 그토록 짧은 시간에 변모한 것도 놀라운 일이다. 유럽은 전통이 더 무겁게 느껴지는 곳이다. 한국의 변화 속도는 놀랍다. 프랑스도 한국과 같은 빠른 성장을 바란다.”

 -한국 정부, 미래창조과학부에 무엇을 제안하는가.
 “고등교육, 과학·기술 연구, 민간분야 우주산업을 담당하고 있는 장관으로서 한국과 협력하는 데 깊은 관심이 있다. 프랑스와 한국은 과학·기술 분야에서 서로 보완 관계다. 프랑스의 강점은 한국의 약점, 한국의 강점은 프랑스의 약점이다. 프랑스는 물리학·수학 등 기초과학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연구 결과를 산업으로 이전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약하다. 한국은 연구 결과의 적용에 강하다. 한국은 이제 기초 연구를 강화할 시점이다. 기초 연구는 미래의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양국의 관심사도 같다. 두 나라 모두 석유가 없어 핵에너지를 개발해 왔으며 녹색성장, 재생 에너지, 스마트 도시, 지속가능한 이동성(sustainable mobility)에 공동의 관심이 있다. 프랑스는 지식의 교류를 위한 ‘보편 정신(universal spirit)’으로 무장한 나라다. 국제 과학·기술 교류를 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은 예산의 9%를 부담하며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프로젝트에 참가하고 있다. ITER은 국제 과학 협력 사업 중 최대 규모다. 한국인 공학자 30명이 프랑스 남부에 있는 카다라슈에서 연구하고 있다.”

 -특히 관심 있는 분야는.
 “에너지, 우주, 환경, 바이오기술, 의료, 나노기술, 마이크로전자기술, 해양학 등이다. 위성 발사의 경우 프랑스는 60회 이상 한 번의 사고 없이 발사에 성공했다. 우주과학 분야 협력의 강화를 희망한다.”

 -과학·기술 협력 증진을 위해서는 양해각서(MOU) 같은 게 필요하지 않은가.
 “올랑드 대통령은 박 대통령을 초청하는 서신을 보냈다. 양국은 과학 교류 협력의 기회가 많다. 나는 5월 파리에서 열리는 프랑스·한국 정보통신기술(ICT) 포럼과 6월 그르노블에서 개최되는 에너지 학회에 한국 학자들을 초청했다. 이런 단계를 거친 후 MOU를 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학·기술과 일자리 창출의 관계를 어떻게 보는가.
 “유럽은 세계 다른 지역에 비해 임금이 매우 높다. 그래서 제품과 용역의 질로 경쟁력을 차별화해야 한다. 혁신이 중요한데 궁극적으로 혁신을 뒷받침하는 것은 강한 기초 연구다. 기술 연구를 새롭게 하는 것은 기초 연구이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수도와 지방의 갈등을 특히 교육·연구 분야에서 어떻게 해결하는가.
 “파리와 인근 지역에서 연구의 40%가량이 이뤄지고 있다. 20년 전부터 2개의 법이 지방분권(decentralization)을 위해 시행되고 있다. 프랑스 국회는 올해 세 번째 법안을 준비 중이다. 국가가 지방정부에 보다 많은 권한을 부여해 상향식 주도(bottom-up initiative)의 혁신을 이루기 위해서다. 교육·연구 분야에서 국가는 일종의 ‘전략가(stratège)’로서 국가·유럽연합·국제 차원의 전략을 정의해야 한다.”

 -고등교육연구부 장관으로서 과제는.
 “순수학문과 응용학문, 기술 연구와 과학 연구, 중장기 연구와 장기 연구, 이론과 실천 사이에 존재하는 장벽을 없애고 불균형을 해소해야 한다. 80개의 대학을 20~30개로 묶는 법안을 준비 중이다. 저소득 계층 학생의 진학률을 높이고 유학생 수를 늘리는 것도 과제다.”

 -한국에서 정부가 어떤 일을 하다가 데모나 파업 등 큰 저항에 부닥치는 경우도 많다.
 “그 또한 민주주의의 매력(charm)이다. 강력하고 창의적인 비판 정신은 민주주의에 좋다. 물론 세상이 급속도로 변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보다 유연해지고 긍정적·개방적이 될 필요가 있다.”

 -양국의 교육 교류는 어떻게 되고 있나.
 “5500명의 한국 학생이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있다. 유학생 출신국가 순위에서 여덟 번째다. 대부분의 한국 학생은 인문학·경제학·전문직종 분야에서 공부하고 있다. 과학 전공 학생은 3%밖에 되지 않는다. 보다 많은 한국 학생이 프랑스에서 과학과 공학을 공부하기를 바란다. 프랑스는 유학생들에게 좋은 사회 환경과 복지 수준을 제공한다. 프랑스에서 박사학위의 41%는 외국 유학생들에게 수여된다. 그만큼 교육 개방도가 높다.”

 -인터뷰 직전 한국에 와 있는 프랑스 학생들을 만났는데 소감은.
 “한국에 있는 프랑스 유학생은 1000명 정도다. 수년 내에 더 많은 프랑스 학생이 한국에서 공부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젊은이들이 한국의 음악·문학·드라마 그리고 역동성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양국은 사이즈도 비슷한 데다 기질도 비슷하다. (프랑스 입장에서) 중국이나 인도는 너무 큰 나라다. 프랑스에서 한국인은 프랑스인과 같은 ‘라틴계 민족’으로 간주된다.”

 인터뷰가 끝나고 피오라소 장관은 함께 방한한 파리 7대학의 뱅상 베르제 총장을 소개했다. 파리 7대학은 40년 전 한국어 과정을 개설했다. 베르제 총장은 “매년 130명의 학생이 한국어와 한국학을 전공으로 선택한다. 프랑스에서 인기가 아주 높아 지난 4년간 한국 전공자들이 두 배로 늘었다”고 전했다. 베르제 총장도 한국 유학생의 유치에 적극적이었다. 그는 “전 세계 학생들에게 가장 유학 가고 싶은 도시를 조사한 결과 파리가 1등이었다”고 강조했다.

 피오라소 장관은 인터뷰 도중 기자에게 어려운 질문을 던졌다. “한국은 프랑스를 어떻게 보는가.” “한국은 프랑스를 단지 문화와 패션의 나라로만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프랑스가 과학과 기술의 나라이기도 하다는 인식의 변화 조짐이 보이는가.” “유학생을 비롯해 보다 많은 프랑스인이 한국에 오게 될 텐데 한국은 이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가.” 우리 정부가 답해야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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