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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석화 간부 “돈 좀 보내세요, 재하도급 드리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지난 1월 매서운 한파가 연일 서울을 덮쳤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있는 삼청동 금융연수원 앞에선 추위가 더 사납게 느껴졌다. 해고된 노동자, 파산한 중소기업 사장…. 서민들의 추운 마음이 각종 시위로 표출되고 있었다.

 아파트 창호 등을 만드는 중소기업 I사의 이모(49) 대표도 그곳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검은색 점퍼에 마스크를 한 이 대표는 흡사 투사의 모습이었다. 거대 권력이 교체되는 현장에서 그는 홀로 악을 썼다. “하청업체를 범죄자로 만든 금호석유화학을 처벌하라.” 인수위 활동 48일간 그의 시위는 계속됐다.

 I업체는 금호석유화학(금호석화)의 하청업체였다. 금호석화가 2009년 3월 창호 자재를 생산·시공하는 건자재사업부를 신설하면서 파트너가 됐다. 대기업의 업무 파트너가 됐다는 사실은 직원 26명 규모의 소규모 업체를 들뜨게 했다.

 그러나 금호석화 건자재사업부의 지모(51) 상무와 윤모(44) 차장이 은근한 제안을 했다. “공사 수주에 필요하니 돈을 좀 보내세요. 재하도급을 약속드리죠.” 이 대표는 2009년 2월 서울 노량진본동 지역주택조합 건설과 관련해 1억원, 2010년 7월 경남 거제시 지역주택조합 건설과 관련해 5000만원을 리베이트 명목으로 건넸다.

 윤 차장은 진해 해군관사 건설 공사와 관련해 “현장 책임자가 회식을 요구한다”며 3000만원을 받아가기도 했다. 그러나 이 돈은 윤 차장의 개인 호주머니로 들어갔다. 금호석화 측은 매출 규모를 부풀리기 위해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하기도 했다. 가짜 계산서를 미리 발급하고 추후 돈을 청구하는 식이었다. I업체와 금호석화 측은 2년여간 약 30억원 상당의 거래를 했다. 그러나 허위로 발급된 계산서 탓에 정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현재 I업체와 금호석화 측은 누락된 금액을 놓고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서로 수십억원을 못 받았다고 주장하는 중이다. 금호석화 측은 지난해 11월 이 대표의 집을 가압류했다. I업체는 결국 파산했다.

 경찰 수사 결과 지 상무 등으로부터 리베이트 대납과 허위 세금계산서를 강요받은 곳은 I업체만이 아니었다. I업체를 비롯해 Y·S업체 등에 총 5억5000만원 상당의 리베이트를 대납하게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사실은 금호석화 자체 감사에서도 드러나 지 상무와 윤 차장은 2011년 말 사직했다. 지 상무 등은 또 2009년 7월부터 2010년 2월까지 12개 하청업체를 상대로 115억원 상당의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6일 지 전 상무와 윤 전 차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리베이트 제공 등에 연루된 하청업체 법인과 대표 등 20명도 입건했다. 금호석화 측은 “회사 차원이 아니라 해당 임원의 단독 판단과 지시에 따라 저질러진 일”이라고 밝혔다.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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