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모기까지도 사랑할 수 있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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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버러지 같은 놈.”혹은 “이 벌레만도 못한 놈.”같은 말을 들어본 사람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아, 나는 인간쓰레기야’라며 자책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너무 실망할 필요 없다. 벌레, 그러니까 곤충은 생각보다 그리 하등한 생물이 아니다. 『곤충의 사생활 엿보기』(당대)를 펴낸 곤충학자 김정환씨는 버러지의 삶과 인간의 삶이 별로 다르지 않다고 한다.

“‘곤충은 벌레다’라고 생각하면 곤충을 하등생물로 볼 수밖에 없죠. 20년 동안 곤충을 관찰하면서 느낀 건 우리도 동물군이고 곤충도 동물군이란 거죠. 곤충의 삶 속으로 깊이 들어가서 그 사생활을 보면 우리하고 사는 게 똑같습니다. 적도 있고 협력자도 있고 공생하는 관계도 있고 그렇게 서로 얽히고 설킨 게 인생이죠.”

나 죽으면 아마 지옥에 갈 거예요. 바늘에 찔린 채…
증명사진처럼 판에 박힌 곤충의 모습에서는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없고 ‘사생활’을 파고들어야 그 진면목을 볼 수 있다는 얘기다. 『곤충의 사생활 엿보기』는 그런 점에서 꽤 독특한 곤충기다. 김정환씨는 텔레비전 화면에 나타난 여배우의 몸에서 모기물린 흔적을 발견한 후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하고 나비의 변신을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카프카의 소설 「변신」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또, 매미의 소리를 듣고는 영조 때의 가인 이정진의 시조를 읊기도 한다.

“곤충을 연구하려면 주변학문을 다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사랑하는 곤충을 어떻게 하면 좀더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할 것인가를 늘 생각해야 하니까요. 곤충의 이야기도 문학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우리 선대에 그런 식으로 느낀 분들이 있어요. 시가를 보면 곤충을 다룬 좋은 시구들이 꽤 많아요. 제가 답답한 것은 좀더 멋있고 좋은 문맥으로 알려줘야 하는데 능력이 모자란다는 거죠.”

어린이들의 질문을 대화형식으로 엮은 『열려라 곤충나라』(지성사), 동화형식으로 풀어 쓴 『곤충 마을에서 생긴 일』(창작과비평사)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든 김정환씨의 책에서 그의 의도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김정환씨가 처음부터 곤충의 생태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곤충에 미쳐 사업까지 접고 전국 방방곡곡의 야산을 헤집고 다니며 표본을 수집하던 시절이 있었다. 학문은 자료의 싸움이라는 생각에 ‘미친 듯’자료를 수집했다. 하지만 곤충을 잡아 표본으로 만들 때마다 심한 죄책감에 시달렸다.

“내가 죽으면 아마 지옥에 갈 거야. 보세요, 곤충들이 저렇게 많이 매달려 있잖아요. 저것들도 다 생명인데 말이에요. 번식이 끝나면 죽을 생명이긴 했지만 그래도 다 생명인데……. 내가 죽고 지옥에 가면 아마도 저렇게 바늘에 찔린 채로 매달려 있지 않을까? 하하하. 곤충을 관찰하면서 녀석들이 생명체로 느껴지니까 함부로 죽일 수가 없더라구요. 그러니 자세히 관찰하게 되고 동영상으로 촬영을 하게 되더라구요.”

곤충분류학자에서 곤충행동학자로의 탈바꿈은 그렇게 시작됐다. 김정환씨는 분류학이 곤충의 초상화를 찍는 것이라면 행동학은 곤충의 사생활을 함께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김정환씨는 곤충의 입장에서 ‘왜 저런 빛깔을 띄게 됐을까?’‘왜 저런 행동을 할까?’생각하면서 소리와 냄새로 이뤄진 곤충의 언어를 조금씩 알게 됐다고 한다. 곤충의 언어를 알면 알수록 또 다른 딜레마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과학과 개인적 감정의 대립이다.

김정환씨는 자신이 관찰한 것을 과학적인 증거로 제시할 수가 없었다. 곤충을 자료로 보지 않고 하나의 존재자로 파악했기 때문이다. 곤충을 관찰할수록 인간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자꾸만 감정이 개입됐다.

하지만 그는 과학을 무시하기로 했다. “과학이란 것은 현재의 과학일 뿐이다. 과학이라는 것은 우리가 아는 만큼의 과학일 뿐이다. 감정이 개입되는 걸 두려워하지 말자”며 마음을 다잡았다. 「모기의 사생활」이란 장에서 “모기도 생명체이다. 그들도 이 지구상에서 살아야 할 권리가 있다. 내 피를 빤 모기는 세대에서 세대로, 생명의 근원이 자손들에게 전해지고 계속 번창할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다.

“모기라는 놈 참 밉죠? 모기를 보면 순간적으로 손이 나갑니다. 미워죽겠죠, 짜증나고….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해봐요. 아, 저 모기까지도 사랑할 수 있다면 내가 도인이 되는 건데. 하지만 그걸 못하죠. 결국은 나도 인간이니까. 모기도 이 세상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는 것 아닙니까? 모기도 하는 역할이 있어요.

피를 빨어 먹으면서 약한 개체군에게 병원균을 옮겨 일찍 세상에서 내보내는 거죠. 모기가 없으면 물고기가 어떻게 먹고삽니까? 치어들이 다 모기 같은 생명체를 먹고사는 건데. 자연은 균형이 생명이에요.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고 있잖아요. 후대를 위해서 우리가 해야할 일은 죽을 사람은 빨리빨리 죽어라, 그겁니다. 장기이식해서 오래오래 살아서 뭐합니까? 죽을 사람이 어떤 힘에 의지해서 생명을 연장하면 다음 세대에 문제가 생겨요. 지구가 담을 수 있는 한계가 있다 이겁니다. 곤충들은 그걸 철저히 하고 있어요.”

모기로 다시 태어날까요?
그는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이 많다. 5천 종의 곤충을 5천 페이지의 책 한 권에 수록하는 『한국곤충대도감』이라는 방대한 작업도 준비중이다. 자료는 거의 완성됐지만 1억 원이라는 제작비 때문에 선뜻 나서는 출판사가 없는 상황이다. 김정환씨가 소장하고 있는 방대한 자료를 이용한 인터넷사이트도 구상했지만 2억 원이라는 제작비가 또 걸림돌이 됐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야산을 떠돌며 곤충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죽을 때까지 할 일은 있는데 과연 이걸 마감할 시간이 있느냐. 그게 문제죠. 이젠 일을 벌일 때가 아니고 조금씩 마감을 해야하는 시점인 것 같아요. 20년 동안 자료를 쌓아놨으니 이젠 정리를 해야죠. 다른 생물로 다시 태어난다면 곤충도 괜찮을 것 같아요. 만약 곤충으로 태어난다면 날개 달린 곤충이 좋겠어요. 모기도 괜찮고요. 하하하.” (김중혁 / 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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