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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행복, 참 어렵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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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지난주 휴가를 다녀왔다. 두 아이 입시에 치여 가족 여행은 10년 만이다. ‘행복했다’. 이렇게 말해 놓고 나니 왠지 낯설다. ‘행복’이란 단어, 실체가 없는 거라 생각했다. 나랑은 관계없는 것, 존재는 하지만 알 수는 없는 그 무엇. 찾거나 누리는 방법도 모르는 것. 누가 가졌는지 혹은 누구라도 갖고는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것. 철저히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것 등….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불안해졌다. 아내와 딸·아들도 이번 휴가가 행복했을까. 묻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Yes”면 당연한 일, “No”면 괜히 속상할까 봐.

 행복을 돈으로 환산할 수 있을까. 어느 정도는 ‘그렇다’. 호주의 한 연구팀은 설문조사를 통해 특정한 사건과 행복도의 연관성을 수치화했다. 이에 따르면 약 2만 달러의 공돈이 생기는 게 결혼과 비슷한 정도의 행복도 상승을 가져왔다. 반면에 약 18만 달러를 잃는 것은 아들·딸을 잃는 것과 비슷한 불행감을 맛보게 했다.

 돈이 많아지면 행복할까? 역시 어느 정도 ‘그렇다’.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의 연구에 따르면 1950년대 이후 25년간 소득이 늘어난 52개 나라 중 45개 나라의 행복도가 높아졌다. 이 기간 소득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한국은 행복감이 극적으로 증가한 나라 5위 안에 들었다.

 물론 소득에 비례해 행복이 무한히 늘어나진 않는다. 소득이 높을수록 행복 증가 효과가 준다.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인 미국은 2000~2006년 사이 삶의 만족도가 되레 줄었다. 연봉 7만5000달러가 넘어가면 소득 증가는 행복 증가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게다가 소득 증가로 얻는 행복은 상대적이다. 남보다 더 부유해져야 행복하고, 남이 더 부유하면 내가 많이 벌었어도 덜 행복해한다. 그 바람에 많이 벌었지만 불행해하기도 한다. 에두아르도 포터는 『모든 것의 가격』에서 “경제 성장으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 몫을 가져가면 전자의 행복이 늘어난 만큼 후자의 행복이 줄어든다”며 “그런 의미에서 행복은 제로섬 게임”이라고 했다.

 ‘국민행복시대’가 박근혜 대통령의 약속이다. 그가 말한 ‘국민행복’은 아버지 박 대통령의 ‘잘살아보세’에 ‘더’나 ‘다’ 같은 부사를 앞에 추가한 개념이다. 대략 ‘경제 성장으로 나라의 부를 늘려 모두가 행복해지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출범 초부터 이걸 갖고 딴죽 걸거나 뒷다리 잡을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소득 2만 달러짜리 나라에서 경제 성장은 행복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게다가 행복시대를 열겠다며 출범한 정권이 정부 구성도 못하고 한 달을 넘기게 생겼다.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한 진통이라 쳐도 좀 과한 것 아닌가.

글=이정재 논설위원·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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