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도 일본서 엔화 채권 발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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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외국인들이 일본에서 쉽게 엔화로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일본 재무성이 '역외 금융시장'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 3월부터 시행키로 했다고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이 23일 보도했다.

재무성 산하 '엔화의 국제화 추진 연구회'는 이날 이런 내용의 보고서를 채택했으며, 재무성은 3월 중 외환법 시행령.재무성령을 개정할 예정이다.

현재는 외국투자가만이 은행을 통해 외국국채.정부기관채권만을 거래할 수 있지만 개선안이 시행되면 외국기업도 엔화표시 회사채를 발행할 수 있고 보험.증권사도 업무를 엔화표시 취급할 수 있게 된다.

증권사가 직접 외국기업의 채권을 발행해 해외투자가.은행.보험사 등과 거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역외 금융시장'이란 일본의 국내 금융규제.세제가 적용되지 않고 자유롭게 금융거래가 이뤄지는 일종의 '금융특구'로 '오프 쇼어(off shore)시장'이라고도 한다.

해당국가에 현지법인 등 거점이 없는 투자가.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이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 거래소가 있는 것은 아니며, 금융기관이 통상 거래와는 별도의 장부를 이용해 거래하고 있다.

재무성은 지금까지 '역외 시장'에서 편법거래가 있을 것을 우려, 자금흐름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역외시장에서의 채권 발행.거래를 규제해 왔다. 그러다 이번에 대폭 수술키로 한 것은 '역외 금융시장'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일본은 1986년부터 '역외 금융시장'을 인정해 왔지만 제 기능을 못한 채 은행이 단기자금을 거래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대신 외국기업이 엔화로 회사채를 발행, 장기자금을 조달할 때는 규제가 적고 세금우대가 되는 런던시장을 주로 이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본의 '역외시장'규모(잔고 기준)는 1997년 97조엔에서 2001년에는 49조엔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반면 2001년 런던시장에서 엔화로 발행된 채권은 일본기업을 포함해 17조엔이었다.

재무성은 규제를 런던 금융시장 수준으로 완화하면 금리가 거의 없는 일본에서 채권을 발행하려는 외국기업이 늘고 '역외금융시장'에 참여하는 금융기관도 늘어 금융기관의 수익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전 세계에서 발행되는 채권의 5%에 불과한 엔화 발행 채권의 비율도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재무성은 엔화로 조달된 자금을 달러 등 다른 화폐로 쉽게 전환할 수 있도록 '역외시장'에서 고도의 금융기술을 구사한 파생금융상품도 취급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또 해외 거주자가 갖고 있는 일본 단기국채(TB)나 정부단기증권(FR)의 상환차익에 대한 비과세 조건을 완화하거나 엔화로 결제되는 무역거래를 늘리기 위해 아시아 각국 금융기관과의 협력 확대를 검토 중이다.

이렇게 되면 일본기업들은 달러로 거래하면서 받는 '외환 리스크'가 줄어든다는 것이 재무성의 판단이다.

도쿄=오대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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