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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뜨는 외식 트렌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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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욱(51)씨는 『맑은 날 정갈한 요리』의 저자. 일반에는 대기업 오너 일가 자제의 요리 선생으로도 유명하다. 한때는 다양한 맛집을 찾아다녔지만 나이가 들수록 우리 음식을 찾게 된다고 한다. 따뜻한 국물이 있는 국밥이나 한식 요리를 먹어야 속이 편안하다고. 그가 즐겨 찾는 한식 전문점 8곳은 조미료는 가급적 자제하고 원재료의 맛을 이용해 담백한 맛을 내는 곳이다.

‘셰프의 단골집’을 위해 맛집을 추천해 달라는 요청에 우정욱 셰프는 한참을 망설였다. 거절도 두 차례 했다. “갈수록 외식을 자제하고 있는데 남들한테 소개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이유였다. 그는 외식 하면 속이 불편해 언제부턴가 집 밥을 주로 먹는다고 했다. 화학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 ‘속이 편한’ 맛집을 추천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자 “그런 곳을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몇 년 전 한 식품업체의 조미료 담당 마케터가 해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바지락으로 육수를 낸다는 유명한 해물칼국수집 소문을 듣고 경기도 고양시 외곽까지 갔는데 맛을 보니 조미료 범벅이었다는 거다. 주인 할머니에게 “혹시 화학조미료를 쓰냐”고 물으니 화를 냈단다. 그러나 소속을 밝히니 그제야 “조금 쓴다”고 털어놨다고 한다. 화학조미료 특유의 감칠맛이 유명 맛집의 비결이었던 셈이다. 화학조미료에 길들여진 사람은 조미료를 넣지 않은 요리를 먹으면 “심심하다”며 고개를 젓는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소비자 입맛이 달라지고 있다. 건강을 먼저 생각하는 문화가 자리하면서 재료가 내는 담백한 맛을 즐기는 사람이 하나둘 늘고 있다. 건강을 챙기는 헬시 푸드(healthy food)는 세계적 흐름이기도 하다. 슬로푸드(slow food)·마크로비오틱(Macrobiotic)·사찰음식이 대표적이다. 이탈리아에서 시작한 슬로푸드는 패스트푸드 문화의 반대적인 의미로 자연에서 나는 천연 재료를 사용한 지역의 음식을 먹자는 운동이다. 지역에서 난 신선한 제철 식재료를 그 지역에서 소비하는 로컬푸드도 여기에 포함된다.

일본에서 시작된 마크로비오틱은 3년 전 처음 국내에 소개됐다. 신선한 제철 식품을 최대한 자연 상태 그대로 먹는 게 원칙이다. 화학조미료 사용은 금하고 뿌리째 식재료를 쓰기 때문에 유기농을 사용해야 한다. 칼로리가 낮아 다이어트식으로도 인기다. 트렌드에 민감한 호텔 업계도 메뉴에 마크로비오틱과 제철 식재료를 사용한 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리츠칼튼 서울 ‘더 가든’의 오명선 총괄셰프는 “최근 건강·힐링 등에 관심이 많다 보니 인위적인 맛보다 원재료가 가지고 있는 맛·향·질감·풍미 등을 선호하는 사람이 많다”며 “이러한 트렌드를 반영하기 위해 올봄에도 현미를 채운 버섯, 적미를 곁들인 단호박 등 마크로비오틱 요리를 내놨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식당이 이런 유행을 얼마나 받쳐줄지 의문”이란 말이 나온다. 화학조미료 없이 식당을 유지하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요리연구가 문인영(32)씨는 “문을 열 때는 유기농, 국산 재료만 사용한다던 식당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다른 식당과 비슷해진다”고 말했다. 좋은 재료를 사용하면 당연히 음식 가격이 비싸질 수밖에 없는데 그 가치를 받아들이는 소비자가 드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좋은 요리의 가치를 알아보고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이른바 ‘착한 식당’이 많아질 거라는 얘기다.

송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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