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헌법 학자로 폭넓고|고대에 반생 바친 행운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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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민중당의 기수가 된 현민 유진오씨-. 그는 5척을 약간 넘어서는 단구지만 재기 넘치는 우등생형. 올해 61세인 그는 서울 태생으로 제일고보 (현 경기중학)와 경성제대를 거쳐 교단을 중심으로 다채롭게 자라온 행운아.
현민은 경기를 수석으로 입학했고 그가 남긴 98점은 아직도 깨뜨려지지 않은 우등생 기록으로 남아 있다는 얘기. 성대 법문학부 시절, 이 드문 우등생은 고 송진우 최두선 이희승씨 등과 함께 고 인촌 김성수 선생에게 문하생으로 발탁되어 장래를 보장받았다.
27세에 보전 (현 고대) 강사로 취임한 이래 총장에까지 그는 고대와 반생을 함께 했다. 한때 문학에 열중, 「김 강사와 T교수」 「창랑정기」 「화상보」 등 작품을 내놓기도 했으나 해방 후 헌법 학자로 유명해졌고 이 때문에 그의 무대도 폭이 넓어졌다. 그는 제헌 국회 헌법 기초 위원 초대 법제처장 한·일 회담 수석 대표 교련 회장 재건 국민 운동 본부장 등 교단을 발판으로 건너뛰기에 서슴지 않았고 민중당 대통령 후보 수락도 그 하나.
고대 학장 시절, 교칙을 위반한 운동 선수를 퇴학시켰고 학생들이 맹휴로 항의했으나 막무가내여서 이때부터 고대는 김성수 교주 현상윤 총장·유진오 학장의 「3석두」가 움직인다는 말이 생긴 정도로 부드러운 인상 너머에는 규율 앞에 까다로운 강직이 감춰져 있다는 것이 제자들의 평. 슬하엔 3남 4녀. 대학 재학 시절에는 이재학씨와 가까왔고 백낙준씨와도 각별한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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