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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산 등 잇단 누출 사고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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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지난 1월 불산 누출 사고가 난 삼성전자 화성공장은 불산 저장탱크와 공급장치를 연결하는 밸브의 유지·관리를 협력업체인 STI서비스에 맡겨 왔다. 이 업체 근로자 5명이 화성공장 화학물질중앙공급실에서 작업을 하다 1명이 사망하고 4명이 부상당했다. 환경부의 조사 결과 STI서비스는 반드시 임명해야 하는 유독물관리자를 두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같은 달 염산 누출 사고를 일으킨 경북 상주 웅진폴리실리콘의 경우 유독물 관리자가 퇴사했는데도 새 관리자를 선임하지 않았다.

 현행 ‘유해화학물질관리법’에선 유독물을 제조·판매·운반하는 유독물 영업자는 현장 경험과 함께 일정한 교육을 받은 유독물 관리자를 임명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생산 현장에선 이런 기본적인 법 규정도 지키지 않았던 것이다.

 환경관리연구소 이용운 대표는 “큰 기업조차 유독물관리자를 별도로 두지 않고 안전관리담당자가 겸하는 사례가 흔하다”며 “기업들이 환경·안전 분야에서 비용을 절감하려고 하다가 큰 사고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대기업들이 위험·유해물질 관리업무를 협력업체에 맡기는 것을 보다 강하게 규제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정한 13가지 하도급 금지 유해 물질에 불산은 아예 빠져 있다. 고용부 김규석 제조산재예방과장은 “협력업체 근로자 보호를 위해 위험성이 큰 작업에 대해서는 도급을 제한하는 제도 개선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화학물질 생산량이 증가하고 화학물질 취급 업체 숫자도 늘고 있지만 지자체의 지도·단속은 이에 따르지 못하고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2006~2010년 4년 동안 국내 유독물 제조량은 12.2% 증가했다. 2011년 말 현재 환경부에 유독물 영업을 등록한 업체 수는 전국적으로 6874곳에 이른다. 하지만 공장이 밀집한 경북 구미의 경우 공무원 1명이 161개 유독물 취급업체를 담당하고 있다.

 구미에선 지난해 9월 (주)휴브글로블의 불산 누출 사고가 일어났고 지난 2일엔 LG실트론 구미 2공장에서 불산·초산·질산을 섞은 혼합산이 유출되는 사고까지 발생했다. 화학물질관리 분야의 한 전문가는 “지도·단속 업무를 맡은 지자체의 전문성과 인력이 부족한 데다 민선 자치단체장이 표를 의식한 나머지 강력한 단속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기존 감독 체계를 보완하지 않으면 더욱 큰 ‘인재’를 부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영순 서울과학기술대 명예교수는 “산업 현장에서 취급하는 화학물질에는 불산보다 훨씬 위험한 화학물질도 많다”며 “점검의 횟수를 늘리고, 감독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무 부처인 환경부와 고용노동부의 유기적인 협조도 필요하다. 고용부는 공장 안에서의 유출로 인한 근로자의 재해를, 환경부는 유독물질의 외부 유출을 담당하다 보니 유독물질에 대한 종합적인 접근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민환경연구소 김정수 부소장은 “두 부처가 일정한 영역만 다루다 보면 관리·감독의 사각지대가 생길 우려가 있다”며 “이번 기회에 불산 등 유독물 유출에 대비한 정부 차원의 컨트롤타워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강찬수·김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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