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일옥 소설집 '밤, 또 하나의 지옥'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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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 소설가 최일옥(56.사진) 씨의 세번째 소설집 『밤, 또 하나의 지옥』(해들누리,8천5백원) 은 주부.출판사 사장.교사 등 현대적 삶을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을 등장시켜 오늘날의 세태를 차분히 그려내고 있다.

표제작을 비롯해 총 10편의 단편은 편당 20~30쪽 내외의 비교적 읽기 쉬운 분량에 꾸밈없는 담백한 문체를 미덕으로 하고 있다.

소설은 크게 '기억의 배반'과 '하느님을 파는 사나이'등 인간 군상의 부조리함을 그린 작품과 돈에 가위눌려 사는 삶을 다룬 '아버지의 가을', '지지않는 꽃', 그리고 중년 여성의 아픈 자아를 그린 '밤, 또 하나의 지옥' 등으로 나뉘어진다.

이 작품들을 일관되게 관통하는 주제는 도저히 어찌해볼 도리없이 마음 아프게 하는 우리 삶의 질곡으로, 그 구체적 모습은 외환위기,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남편 혹은 인간, 부패구조에 기반한 사회 등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 주제를 형상화하는 방법은 개인들에게 닥친 사건이나 사소한 일상을 통하고 있기에 독자의 공감대를 확보할 수 있다.

예컨대 표제작의 경우 남편과 삼수생 아들의 귀가를 기다리는 40대 평범한 주부의 어느 하룻밤의 심리 묘사를 통해 극복하기 힘든 아픈 현실의 속내를 진솔하게 그리고 있다.

그녀의 소설 속에는 이런 아픈 삶에 대한 묘사와 함께 도피의 꿈이 스멀스멀 자라난다.

협심증 환자인 잡지사 사장이 외환위기 때 1억7백만원을 부도낸 뒤 친구의 도움으로 시인들의 페루 방문길에 함께 오른 뒤 잠적하려는 시도를 다룬 '탯줄'이 대표적이다. 아픈 현실에 대놓고 싸우기보다 도피를 꿈꾸는 모습이 오히려 더 살갑게 다가오는 건 작가의 속내가 그만큼 진실함을 입증하고 있다.

작가는 "3년 전 암 수술로 죽음의 문턱을 벗어나 새로이 이 빛나는 세상을 바라보았을 때 비로소 나는 글도 사람 사는 것도 같다는 생각을 하게됐다"며 "등단 초기 문학이 주는 두려움으로 작아지기만 했던 내가 이제야 소설은 사람이 쓰는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일뿐임을 알게 됐다"고 고백한다.

최씨는 1987년 동서문학 신인상과 88년 KBS방송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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