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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동부 독립운동의 거점, 무관심 속 헐릴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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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뉴욕한인교회 건물 전경. [뉴욕=정경민 특파원]

일제강점기에 미 동부지역 독립운동의 산실 역할을 했던 건물이 한국 정부의 무관심 속에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뉴욕 컬럼비아대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뉴욕한인교회’다. 이 교회는 3·1운동 2주년 기념으로 1921년 3월 2일 서재필 박사가 주도해 1300여 명의 한인동포와 친한파 미국인이 모여 연 ‘한인연합대회’에서 탄생했다.

 두 차례 거처를 옮긴 끝에 1927년 조병옥·이용설 등이 주도해 현재의 건물을 사들여 입주했다. 이후 서재필·이승만·안익태·조병옥·김활란 등 수많은 애국지사가 이곳에 기숙하거나 거쳐가며 독립운동의 산실이 됐다. 이 교회 이용보 담임목사는 “당시 컬럼비아대에 다녔던 한인 유학생들이 자연스럽게 교회에 모여 일제 식민의 울분을 토로하면서 동부지역 독립운동가의 거점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 교회는 올여름 재건축을 앞두고 있다. 올해로 설립 92주년을 맞는 동안 건물이 노후해 안전문제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교회 측은 건물의 역사적 의미를 감안해 노무현 정부 시절 한국 정부에 독립운동 사적지 지정을 신청했다. 교회 곳곳에 남아 있는 독립운동 유물과 자료를 영구 전시할 기념관을 설치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난색을 표했다.

안익태 선생이 뉴욕한인교회에 머물 당시 애국가 악상을 떠올리며 쳤던 피아노. [뉴욕=정경민 특파원]

 이 목사는 “이곳을 거쳐간 독립운동가 일부가 훗날 친일 활동을 한 게 문제 된 걸로 안다”며 “그러나 독립운동의 산실 역할을 한 역사적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교회엔 1849년 설립된 명품 피아노 제작회사 ‘에머슨’이 만든 골동품 피아노도 보관돼 있다. 이 목사는 “뉴욕한인교회 70년사엔 1930년대 초 안익태 선생이 이곳에 머물 당시 애국가 악상을 떠올리며 쳤던 피아노로 기술돼 있다”고 설명했다. 안익태는 1936년 애국가를 작곡했다.

 정문 입구엔 1927년 입주 당시 붙였던 현판도 그대로 남아 있다. 이 목사는 “서재필·이승만·안익태 선생이 열고 닫았던 대문의 문고리도 옛날 그대로”라고 말했다. 지상 4층, 지하 1층 건물 내부도 대부분 옛날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지만 심하게 낡아 대대적 보수가 시급한 상황이다. 교회 측은 그동안 건물 신축 기금으로 368만 달러를 모았다. 그러나 이 기금으론 역사적인 가치를 보존하면서 건물을 리모델링하기에 역부족이다. 이 목사는 “정부 지원이 없다면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짓는 게 불가피하다”며 “대문과 현판 등만 떼어내 전시하는 방안을 강구 중”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와 달리 미국에서 한인동포 정체성 찾기 운동을 펼치고 있는 한미헤리티지재단은 2010년 이 교회를 ‘한인 이민 사적지 1호’로 지정했다. 한국 독립기념관 홍선표 책임연구원은 “뉴욕 한인교회의 역사적 가치는 이미 여러 사료를 통해 입증됐다”며 “더 이상 건물이 훼손되기 전에 뉴욕의 독립기념관으로 복원하는 게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정경민 특파원, 강이종행 뉴욕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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