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 털기에 맞설 자기방어권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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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인터넷 이용자가 자신과 관련된 개인 정보·저작물의 삭제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잊혀질 권리’ 입법이 국회에서 추진되고 있다. 이에 대해 “프라이버시 보호 차원에서 반드시 도입돼야 한다”는 주장과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반론이 맞서고 있다. 두 갈래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원장

잊혀질 권리(Right to be forgotten)란 인터넷에서 생성되고 저장·유통되는 개인정보에 대해 삭제를 요청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잊혀질 권리가 우리 사회에서 본격 논의된 지 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찬반 입장이 팽팽한 상황이다.

 혹자는 잊혀질 권리 도입이 표현의 자유와 저작권 등 다른 권리를 침해하고 권리 간 균형을 깨뜨리며, 인터넷 경제를 위축시킨다고 우려한다. 하지만 잊혀질 권리는 오히려 SNS 등 최신 인터넷 환경에서 축소돼 가는 이용자의 자기정보통제권을 보장하기 위한 균형 유지 장치로 등장한 것이다. 신기술을 통해 얻은 대량의 개인정보를 기반으로 발전해온 인터넷 기업의 부와 권력, 무분별한 표현의 자유로 인해 상대적으로 축소되고 침해당한 정보 주체의 통제권을 원래 상태로 회복시킬 마지노선이자 균형추다. 어릴 때 쓴 글로 직장에서 쫓겨나거나, 형을 다 마쳐도 죄인 취급을 받는 등 국민들의 행복추구권과 새 출발할 권리, 일사부재리 원칙 같은 기존의 인간다운 삶의 원칙과 균형이 무너지고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혹자는 국내에도 이미 개인정보보호법 등에 개인정보 정정·삭제권과 같은 관련 조항이 존재하므로 불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여전히 신상 털기와 같은 고통이 계속되는 등 기존 조항들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없음이 증명되고 있다. 유사 조항의 유무가 아니라 적용 대상과 의무화 범위, 벌칙 정도 등 문제 해결 효과가 없는 이유와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

 역사기록을 훼손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으나 이는 어떻게 잊혀질 권리를 구현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한 언론사의 경우 온라인에서만 수정과 삭제를 허용하고 오프라인 기사는 수정하지 않는 등 나름의 원칙을 갖고 있다. 이러한 지혜들이 모여 원칙을 마련하면 오히려 잊혀질 권리를 통해 잘못된 기록을 바로잡을 수 있다.

 지금은 소모적인 권리 논쟁보다 잊혀질 권리를 SNS 시대의 새로운 권리로 인정하고 권리 범위와 한계, 적용 방법과 절차를 구체적으로 함께 찾아야 할 때다. 프랑스처럼 법에 잊혀질 권리를 명시하고 구체적인 적용 범위와 시행 절차는 관련 주체들의 협의하에 규정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다행히 우리 사회에서도 최근 포털의 잊혀질 권리 보장을 위한 가이드라인 제정과 같은 자율규제 차원의 노력들이 이뤄지고 있다.

 잊혀질 권리를 올바로 정립하기 위해서는 다음 사항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우선 잊혀질 권리는 헌법상 다른 권리보다 우선하는 최상의 권리가 아니며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열쇠가 아니다. 유럽도 잊혀질 권리가 공공이익에 우선할 수 없음을 명확히 하고 표현의 자유, 보건 복지 차원의 공익, 연구에 필요한 경우를 예외로 하고 있다. 둘째, 잊혀질 권리의 과잉과 오용이 가져올 역기능을 방지해야 한다. 셋째는 잊혀질 권리가 법 제정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완벽한 법부터 만들려는 노력은 자칫 ‘잊혀질 권리 실현 불가능’ 논리에 빠질 위험이 있다. 법 제·개정과 함께 이용자 스스로 책임의식을 갖고 신중히 글을 올리고 남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윤리의식이 필요하다. 또 선택적 삭제가 용이하게끔 관련 기술을 연구개발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들이 균형 있게 이루어질 때 비로소 잊혀질 권리가 온전히 뿌리내리게 될 것이다.

임 종 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