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반드리오」군재|<인도의 친공정책 입안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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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0월1일부터 계속되고 있는 「인도네시아」특별군재에 의한 「수반드리오」단죄의 날은 가까워 오고 있다. 사실상 거세당한 「수카르노」대통려의 친공정책의 입안자로서 금년3월12일 정변 때까지 제1부수상·외상직을 누려온 「수반드릭도」는 지난 1년간, 작년 9·30친공「쿠데타」기도에 관련되었다고 주장하는 반공학생 단체들의 줄기찬 규탄의 대상이었다.
「수카루노」의 나사콤」정책의 한 지주였던 공산당도 무너지고 「수카르노」의 권한도 거의 박탈당해 상하량면의 밑받침이 제거되고 반공군부가 전제하는 가운데 열린 「수반드리오」의 국가변란 혐의공판은 「수반드리오」의 혐의사실에 대한 확증을 제시할 수 있건 없건 간에 그가 아무리 혐의사실을 부인할지라도 「인도네시아」의 대세는 「수반드리오」피고에 대한 유죄선고를 불가피하게 하고있다. 현재까지의 심리결과로는 「수카르노」가 9·30「쿠데타」를 사전에 안 혐의는 밝혀지지 않았고 「수반드리오」자신도 공산당의 「쿠데타」계획 가능성은 알았지만 계획자체는 몰랐으며 「수카르노」대통령에게도 보고하지 않았다고 궁색한 변명을 하고있다.
「수반드리오」피고의 진술가운데 상식으로는 도저히 수긍되지 않아 그의 관련 심증을 굳혀주는 사실은 다음과 같다.
그는 정보책임자로서 「쿠데타」음모를 사전에 알고있은 혐의를 부인했으나 공산주의자들의 「쿠데타」음모 가능성만은 알고있었다고 시인했다. 그리고 중공이 공산당의 「쿠데타」기도를 도와주겠다고 약속한 사실도 알고 있었다고 시인했다. 이에 대해 군재는 『공산당이 중공의 도움으로 「쿠데타」를 계획하고 있다는 보고를 듣고도 왜 「수카르노」에게 보고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수반드리오」는 『당시 그 정보는 아직 확실하지 않았고 그만한 정보는 「수카르노」 자신도 알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라고 답변했다. 이상과 같은 「수반드리오」의 진술은 「수반드리오」가 「쿠데타」에 적극적으로는 가담하지 않았을 지라도 공산당의 「쿠데타」계획 움직임을 사전에 알고도 묵인한 심증을 굳혀준다.
더우기 그가 인니중앙정보부의 책임자로서 그런 사실을 알고도 「수카르노」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은 공산당의 계획누설을 의식적으로 방지해줌으로써 「쿠데타」음모를 도운 것으로 볼 수 있다. 「수반드리오」는 공산당의 세력이 강한 동부와 중부 「자바」에서 「쿠데타」발생 몇달전 공산당이 중공의 10만정의 무기원조로 당원들에게 군사훈련을 시키고 있은 사실을 알고도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은데 대한 군재의 추궁에 이는 「인도네시아」의 국방력강화의 일환으로 알고있었다는 변명으로 발뺌을 시도하고 있으나 자국의 특정정당이 정부당국도 모르게 특정외국으로부터 무기원조를 받아 단독으로 군대를 조직할 수 있는지는 건전한 상식으로는 잘 이해되지 않는 일이다.
공산당의 무장계획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첫 보고를 언제 받았으며, 그런 계획은 언제 발단되었느냐는 추궁에 대해 피고는 『확실치 않다. 아마 신문에서 읽었는지도 모른다』고 정보책임자로서는 있을 수 없고 납득이 가지 않는 답변을 하면서 『그 기간 중엔 외유 중이었다』고 답변을 회피하는 태도는 그의 움직일 수 없는 관련 혐의심증을 더욱 굳혀준다.
공산 「쿠데타」음모를 작년 9월16일에 보고 받고 『부하에게 확인을 명령하고 20일엔 그 보고가 들렸다는 보고를 들었다』고 변명한 사실엔 그가 9·30 「쿠데타」음모를 적극 방조한 심증까지 일으키며, 10월1일에 발표된 「혁명위」명단에 『나의 허락도 없이 나의 이름을 올려놓았다』는 변명과 함께 군재로 하여금 유죄 판결케 할 결정적인 사실이 될 가능성이 있다.
4일에 일단 휴정, 7일에 재계, 12일에 선고공판을 열 군재는 「수반드리오」에게 유죄 판결할 것은 거의 기정 사실이나 마찬가지다. 문제는 이 공판에서 「수카르노」가 9·30음모를 사전에 조금이라도 안 사실이 밝혀질 것인지의 여행이나 「수반드리오」의 진술에서 그런 혐의가 조금이라도 밝혀지면 「수카르노」는 현재의 명목상의 대통령직에서도 제거될 날이 멀지 않을 것이다.

<이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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