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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청구권 자금의 합리적 사용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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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일 국교의 정상화를 계기로 하여 경제개발에 전기를 가져올 것이라는 애초의 기대와는 달리 청구권자금의 사용과정에 있어서 적지 않은 의구가 드러나기 시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즉 정부는 청구권자금의 2차년도 사용계획을 마련하고 협정에 규정된 마감날인 오는 10월18일까지 일본정부에 통고하기 위하여 8일께 국회에 그 사용계획 동의안을 제출할 예정인 것으로 측문된다. 당초 정부는 총규모 9천1백만불선의 2차년도 사용계획안을 짰으나 지난9월초의 한·일 경제각료간담회에서 일본측의 협조를 구했던 것이나 일본측의 냉담한 반응 때문에 원안을 대폭 수정하여 7천5백만불선으로 그것을 감축시키지 않으면 안되었으며 실지 자금사용액은 2차년도에도 5천만불을 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청구권자금은 그 1차년도 사용계획에서도 협정에 규정된 연간 5천만불 이상인 9천3백59만불로 한·일간에 합의된바 있으나 지난9월말현재로 무상자금은 54%, 재정차관은 전액 구매계약을 맺었다고 하나 일본측의 구매인증을 얻은 것은 철도개량사업 하나뿐이라는 실정에 견주어 일본측의 술책에 말 것 같은 인상을 짙게 해주고 있다. 과거 일본이 동남아에 배상조로 제공한 자금의 집행실적이 여실히 말해 주고 있듯이 일본은 이른바 실속 있는 장사가 되지 않는 자금사용에는 시간을 끌면서 부담없이 의무를 해소시키려는 저의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청구권자금을 조기사용하려고 시도하여 왔다는 것 자체가 국민의 눈에는 거슬리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며 집행하지도 못할 계획을 세워 놓고 이를 예산에 계상해 놓는 정책은 마땅히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오히려 쓸데없이 국가적 체면을 손상시켜 가면서 조기사용운운으로 임할 것이 아니라 협정에 명시된 금액이나마 확실하게 당해년도에 사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떳떳하지 않겠는가. 따라서 정부로서는 협정에 규정된 한도내에서 사용계획을 짜고 이에 차질이 없도록 일본측의 구매인증을 재촉하는 방향으로 청구권자금을 운용하는 것이 건전하고도 합리적인 것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예산상의 차질도 면할 수있고 경제개발계획도 견실하게 집행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보도된 바에 의하면 청구권자금의 1차년도 구매계약체결분의 60%는 수의계약으로 이루어졌다 한다. 수의계약중심으로 구매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써도 여러 가지 석연치 않은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당초 정부는 「청구권자금운용 및 관리에 관한법 시행령」에서 정부에 의한 구매는 조달청이 공고, 입찰·심사·구매토록 규정하여 청구권자금의 사용과정에서 파생될 수도 있는 의혹의 여지를 배제시킴으로써 국민의 환영을 받은 바 있으나 이를 고정하여 「긴급하다고 인정될 때에 한하여 수의계약을 할 수 있도록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수의계약은 예외적인 경우에 한하여 허용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거꾸로 수의계약중심으로 계약이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인데 이는 당연히 의혹을 살만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같이 저조한 청구권자금의 운영을 개선하고 아울러 그 구매과정에서 개재된 의혹을 조속히 해소시키려면 협정에 명시된 한도 내에서 그 사용계획이 처음부터 작성되어야 할 것이며 일본측의 고의적인 인증기피를 방지하는데 노력을 집중할 뿐만 아니라 모든 구매는 공개입찰로 이루어져야 할 것임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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