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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손으로 컴퓨터파일 만지는 韓기술 "와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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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2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롱비치의 센터시어터. 세계 최대의 지식콘서트 TED 콘퍼런스가 진행되는 이곳 강단에 캐주얼한 재킷과 청바지 차림의 한국인 청년이 올라섰다. “우리가 있는 이 세계와 컴퓨터 화면 속의 세계, 만약 여기에 경계가 없다면 어떨까요? 저는 그런 상상을 해봤습니다.”

 이 말과 함께 그가 대형 화면을 통해 관객들 앞에 펼쳐 보인 것은 컴퓨터 한 대. 얇은 모니터 화면은 투명해 뒤가 훤히 비쳐 보였고, 아래에는 키보드가 놓여 있다. “이제 모니터와 키보드 사이로 손을 넣어보겠습니다. 맨손으로 파일들을 만지고 픽셀(컴퓨터 화면을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을 움켜쥐어 볼까요.” 화면 속에서 그의 손은 마치 책장에서 책을 고르듯 컴퓨터의 문서 폴더를 넘겼다. 전자책 파일을 열더니 책장을 손으로 넘기고, 밑줄을 긋고, 몇몇 단어는 컴퓨터 안의 메모장에다 손으로 직접 옮겨 적는 장면이 펼쳐졌다. 관객들은 푹신한 의자에 기대고 있던 몸을 반쯤 일으켜 바로 앉기 시작했다. 그는 말을 이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물건을 산 뒤 맞지 않아 환불한 적 있으시죠? 이젠 걱정 마세요.” 그가 화면에 보인 것은 온라인 착용실. 스마트폰으로 검색한 손목시계를 클릭하자 시계가 전화기 화면을 뚫고 나와 손목에 입체적으로 감겼다.

이진하 선임연구원

강연의 주인공은 이진하(26)씨다. 경기과학고와 도쿄대를 졸업한 그는 미국 MIT 박사과정 중에 있으며, 현재 삼성전자 선임연구원이다. 그는 동작인식 센서와 투명 디스플레이, 자기부상 기술을 통해 디지털 정보와 인간 사이 경계를 없애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이날 발표한 기술은 그가 MIT 박사과정과 마이크로소프트 인턴 재직시 개발한 것들이다.

 “이제 인간의 움직임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벗어날 것입니다. 발레 동작을 원격으로 배울 수 있 게 되는 거죠.” 관객들은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이날 BBC와 CNN, 뉴욕타임스 같은 외신들은 이 연구원의 강의를 비중 있게 보도했다. 이 발표는 TED 행사 중 ‘펠로 토크’ 두 번째 세션의 첫 순서로 진행됐다. ‘펠로’란 TED가 매년 청년 인재를 선발해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연구원은 올해 TED 펠로 중 유일한 한국인이다. 본지는 국내 언론으로는 유일하게 3년 연속 TED 주최 측의 공식 초청을 받아 참석했다.

 “이제, 남아 있는 장벽은 오직 우리의 상상력입니다.” 이 연구원이 발표를 끝내며 남긴 이 한마디는 곧 TED의 정신이다. 올해 TED 프라이즈 수상자인 수가타 미트라 박사도 마찬가지다. 그는 인도 빈민가에 컴퓨터를 설치해 아이들이 마음대로 접하게 했고, 아이들은 스스로 사용법을 익혀 프로그래밍까지 했다.

자기주도학습의 아이디어가 빈곤 아동의 삶을 바꾸기 시작한 ‘상상력의 힘’이다. 관객의 기립박수를 받은 예술가 필 한센(34)의 강연도 그랬다. 그는 예술가로서 ‘천형’으로 여길 수 있는 손떨림 장애를 자신만의 강점으로 살린 발상의 전환으로 새로운 예술세계를 창조했다. 빈곤, 신체장애, 기술의 한계. 인간을 무릎 꿇게 하려는 어떤 장벽이라도 긍정적인 상상력과 실행력으로 얼마든지 뛰어넘을 수 있다는 생생한 사례들이다.

 ‘세상에 퍼뜨릴 만한 생각’이라는 구호로 1990년 시작한 TED는 세계 최대의 지식콘서트로 자리 잡았다. 앨 고어, 빌 클린턴 같은 유명인사에서부터 이진하씨와 같이 대중에게는 낯선 청년 기술자나 과학자도 강단에 선다. 올해에는 일반인들도 강사로 뽑혔다. 상상력이 소수 천재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믿음에서다. 이 중 한국인은 4명으로, 비영어권 국가로서 최다다.

고란.심서현 기자

SpaceTop, CHI 2013 from Jinha Lee on Vimeo.

What You Click Is What You Wear (WYCIWYW) from Jinha Lee on Vim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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