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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와 비행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6·25때 아깝게도 타버린 남산의 국립과학박물관이 창경원 옆자리에 터를 잡아 국립과학관이란 이름으로 다시 살림을 차린 것은 아마도 5·16후였다고 기억된다.
그후 나는 몇번인가 그 아담한(?) 2층 건물을 찾은 일이 있었다. 3층은 아직 세워지지 못했지만 내게는 과학관이 다시 세워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견스럽기만 했다.
그러던 내가 벌써 과학관에 들어설 때마다 한 가닥의 실망을 느끼게 되다니 세상일이란 더우기 나라에서 하는 일이란 그렇게 뜻대로 쉽게 되어지는게 아니라는 것쯤은 알만한 나이도 되었는데 말이다.
아직도 채 가꾸어지지 않은 넓은 뜰 한편에는 한대의 작은 「프로펠러」식 경비행기가 얼른 눈에 띄었다. 이름은 1950년에 미국서 사들인 「건국호」. 그리고 2층에는 금시에라도 뛰어나올 듯 버티고 서있는 호랑이 한마리. 조잡한 전시장의 진열품들과 작은 사무실 몇 개. 해가 바뀌어도 그것들은 별로 변할 줄 몰랐다.
호랑이는 나더러 네가 더 보고 싶어하는게 무엇이길래 그런 얼굴을 하고 있느냐고 따지고 들기라도 하는 것 같아서 나는 흡찟 한발 물러서며 씁씁히 웃고 말았다.
바로 옆에 자리잡은 창경원에는 1395년(이조 대조4년)에 새겨진 대리석 천문도가 땅바닥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데(지금은 실내로 옮겨졌지만), 과학관의 태국산 호랑이 표본은 유리장 속에 들어 있었다. 우리 조상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발명했다는 측우기와 금속활자와 그 인쇄기들은 어디 있으며, 세계에 하나밖에 없다는 1664년 10월에 나타났던 대혜성의 관측도(성변측후단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국립과학관은 우리민족의 <과학센터>이다. 그것이 과학관인지 과학박물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우리에게 반드시 있어야할 기관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히 우리 민족의 과학적 창조성을 상징하고 과학정신을 불러일으키는 희망적 존재가 되어야만 한다.
우리 민족의 과학기술이 어떻게 발달하였으며, 우리 나라 지유의 생물자원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과학관은 그것들을 연구하여 우리의 과학적 전통을 세우고 우리의 과학문화유산을 보존하는 기관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서울에는 동양최대의 과학박물관이 세워진다고 한다. 나는 그것이 동양최대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아끼며 키워갈 수 있는 실속있고 쓸모있는 기관이 되었으면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도 하지 않고 있다가 남들이 해주겠다고 나서니까 좋다고 나서는 태도는 과학과는 거리가 먼 자세가 아닐까?
전상운<성신여사대교수·과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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