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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3. 끝없는 편력 <118>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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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 너희들 지금 차량 데모 하고 오는 길이지?

그때만 해도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이라 당당하게 그렇다고 대답했고 경찰들은 통금만 위반해도 귀싸대기 올려 붙이고 말을 시작하더니 점잖게 대했다. 노량진 본서에서 차량이 와서 우리 세 사람을 데려갔고 우리는 그제서야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밤 늦게까지 조사를 받고 진술서에 지장까지 누르고 유치장에 입감되었는데 그로부터 이틀 뒤에 이십일 구류 처분을 받았다. 당시에는 시위 정도는 모두 구류 정도였던, 그야말로 쌍방이 서로 어수룩하던 시절이었다.

여기서 내가 초기 소설의 배경이 되었던 세계로 나를 안내한 그 유명한 '대위'라는 노동자를 만나게 된다. 처음에 유치장에 들어가니 절도죄로 잡혀온 소년 두 명과 거의 걸인처럼 보이는 주정뱅이 늙은이 하나가 있었다. 늙은이는 이튿날 나가 버리고 두 소년과 셋이서 남아 있었는데 저녁에 누군가 입감시키려는 순경과 큰 소리로 말다툼을 하면서 들어왔다.

- 소지품 다 내놔요.

- 좆도 가진 것두 하나 없는데 뭘 내놔?

- 이건 뭐야?

- 보면 몰라, 담배하구 성냥.

순경이 사내의 호주머니에 손을 넣으려고 했더니 그가 비틀어서 그의 등 뒤로 꼬아 올렸다.

- 이거 다 내 돈 주구 산 거라구.

- 어어, 이 손 못놔?

다른 순경이 달려들고 밀치고 하다가 잠시 목소리가 잦아들더니 그는 담배를 붙여서 물고 유치장 쪽으로 다가왔다.

- 그래 맡겨두고 펴라 이거지?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철창이 열리고 그가 들어서며 나를 한번 힐끗 보고는 소년들에게 말했다.

- 얘들아 거 담요 좀 갖다 좀 깔아라.

소년들은 눈치가 빨라서 얼른 윗목에 쌓아둔 담요를 뼁끼통 반대편 안쪽에 깔았다. 나는 철창 옆이 상석인 줄 알았더니 그거야 불빛에 책 읽으려는 내게 그렇고 저들에게는 담당 순경이 잘 안 보이는 구석자리가 상석인 셈이었다. 그는 담배를 맛있게 빨면서 비스듬하게 옆으로 눕더니 내게 말을 걸었다.

- 형씨 인사합시다. 머 사람두 많지 않은데 민주적으루다 지내지. 나 장이라구 하오.

내가 머리를 숙여 보이며 인사를 하자 그가 다시 물었다.

- 보아허니 학생 같은데 어찌 들어오셨나?

- 데모하다가….

- 저런 쳐죽일 놈들! 아직두 쪽바리 세상이라니까. 자, 이거나 주욱 빨아.

장씨가 내게 피우던 담배를 내밀었다. 실은 아까부터 그 구수한 냄새에 목구멍이 간질거리던 터였다.

그림=민정기
글씨=여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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