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히스패닉, 흑인보다 많아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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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히스패닉(스페인어를 쓰는 라틴계 사람)이 흑인을 제치고 미국 최대 소수인종으로 부상했다. 미국의 인구 지도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미국 내 히스패닉의 3분의 2는 멕시코 출신인 것으로 알려졌다. 멕시코가 19세기 중반 미국과의 전쟁에서 캘리포니아와 텍사스.뉴멕시코를 빼앗기고 물러났다는 역사적 사실을 고려한다면 멕시코인들로선 나름대로 '복수'를 하고 있는 셈이다.

21일 미 인구조사국 발표(추정치)에 따르면 2001년 7월 현재 히스패닉 인구는 미국 전체 인구 2억8천4백80만명 가운데 13%를 차지, 12.7%인 흑인을 처음으로 앞질렀다.

하지만 2000년 4월의 조사 때는 히스패닉의 비율이 12.5%로, 12.6%를 차지한 흑인보다 근소하게 낮았다. 히스패닉 인구는 2000년 4월 당시보다 4.7% 증가한 3천7백만명이며 흑인은 1.5% 늘어난 3천6백20만명이다.

히스패닉이 이처럼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보다 남미쪽에서 끊임없이 미국으로 합법.불법을 포함한 이민자들이 몰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히스패닉은 가톨릭을 신봉해 낙태와 피임을 꺼리기 때문에 출산율도 매우 높다. 따라서 히스패닉과 흑인의 격차는 앞으로도 계속 벌어질 것이라는 게 조사를 담당한 관계자들의 전망이다.

이번 조사기간인 15개월 동안에도 히스패닉 인구는 1백70만명 증가했으나 흑인들은 50여만명 느는 데 머물렀다. 아시아계는 이 기간에 약 40만명 늘어난 1천1백만명으로 3.8%를 점유하며 뒤를 이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알래스카 거주자들을 포함해 4백30만명으로 증가율은 2.2%였다.

하지만 미국 내 최대 인종은 아직도 분명히 백인이다. 히스패닉을 제외할 경우 전체의 약 68.8%에 달하는 1억9천6백20만명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비중은 2000년 4월의 69.5%보다 낮아졌다. 상무부 산하 인구통계국의 이번 발표는 2000년 이후 인종과 소수민족에 관한 통계로는 거의 2년 만에 새로 나온 것이다.

한편 히스패닉 인구가 팽창함에 따라 정치인들도 이들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인구증가=정치적 파워 형성'의 등식이 자연스레 생겨나는 것이다.

미 공화당은 지난해 처음으로 히스패닉 이민자들의 시민권 취득행사에 대표를 보내기도 했다. 부시 대통령은 라디오 주례 연설을 스페인어로 녹음하는 등 이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제스처를 취한다.

본인 스스로 스페인어를 구사하고 플로리다 주지사인 동생 젭 부시의 부인도 히스패닉이라는 인연이 있는 부시는 2000년 대선 때도 히스패닉들의 지지를 받았다.

경제적으로도 히스패닉을 겨냥한 기업들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기업들이 히스패닉들의 취향에 맞는 의류 등 제품을 개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 내 수퍼마켓에는 히스패닉의 입맛에 맞춘 식품들도 많이 등장할 것으로 업계는 관측하고 있다.

뉴욕=심상복 특파원sims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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