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소년원 리포트] 下. 검정고시 … 기술자격 … 새 삶 가꾼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9면

소년원 복서 손명수(18).

지난해 11월 30일이 퇴원일이었지만 그는 아직 대덕소년원에 있다.

지금 사회로 돌아가기가 싫어서다. '내년 2월에 나가겠다'는 그의 퇴원 연기 신청을 소년원은 받아주었다.

"소년원에 두번쨉니다. 여기서 제 길을 찾았습니다. 길이 정해진 이상 대학에 갈 때까지 이곳에 있을 겁니다."

그는 기자에게 "기사를 쓸 때 내 이름을 꼭 밝혀달라"고 했다. "다시는 이곳에 들어오지 않겠다는 스스로의 최면"이라고 말했다. 소년원 출신임을 세상에 밝혀 더 이상 한 눈 팔지 않고 당당하게 제 길을 가겠다는 거였다.

孫군은 명문 체육고 2년 중퇴자다. 학교에서 권투(헤비급)를 했다. 그러다 우연히 남의 물건을 훔치면서 그의 청년기는 뒤틀렸다. 법원으로부터 보호처분을 받고 퇴학당한 것이다. 2000년 여름의 일이다.

그 해 가을 다시 좀도둑질을 했다가 충주소년원에 들어간다. 이듬해 소년원을 나온 뒤 간이 커진 그는 남의 집에 들어가 절도를 하다 붙잡혀 이곳에 왔다. 2001년 11월이다.

여기서 孫군은 다시 권투 글러브를 끼었다. 그리고 전국아마추어선수권대회 우승, 전국체전 동메달 등 네차례 입상했다.

'지금 당장 나가도 서로 데려가려 할 정도'(안종우 코치)의 실력이지만 孫군의 생각은 다른 데 있다.

"여기서 대입검정고시를 통과해 공부로 당당하게 대학에 들어갈 겁니다. "

성인이 되는 길목에서 그는 희망을 찾은 것이다. 그래서 소년원은 그에게 진정한 학교다.

이렇게 소년원은 좌절한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곳이기도 하다.

孫군처럼 퇴원일이 돼도 나가지 않은 소년원생은 1999년 이후 지금까지 4백10명. 그들은 자신이 정한 목표를 향해 땀을 흘리고 있다.

그들뿐 아니라 의지를 잃지 않는 소년.소녀들에게 소년원은 새 삶을 개척하는 기회의 장소다.

지난 연말 최은영(17.가명)양은 안양여자소년원을 나와 부모 품에 안겼다. 그녀는 친구를 인신매매하려다 소년원에 들어갔었다.

소년원 생활 6개월 동안 그녀는 방송작가의 꿈을 키웠다. 퇴원 전 소년원에서 취재팀 소개로 드라마 작가를 만난 崔양은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썼다.

'나는 항상 어른이 되고 싶었다. 화려함과 자유스러움이 동경의 대상으로 비춰졌다. 그래서 나는 늘 어른인 척 했다. 집을 떠나 홀로서기도 시도해보고 신선한 비누 냄새보다 어울리지도 않는 짙은 향수 속에서 살아왔다. 비로소 소녀로 돌아온 지금 나의 모습이 그러나 가장 아름답다 '.

崔양은 지금 고졸 검정고시를 준비 중이다. 그렇게 좋아하던 친구들과의 만남도 접었다.

"다시는 어른이 되기 전에 어른인 척 하지 않을게요. 그래야만 꿈을 이룰 것 같아요." 최근 취재팀에 전화를 한 崔양의 다짐이다.

2000년 상습절도와 본드흡입으로 소년원에 갔었던 김경아(19.가명)양은 그런 꿈을 이룬 사례다. 6개월 만에 고졸검정고시 합격증과 미용사 자격증을 쥐고 꿈에 그리던 기업형 미용실에 당당히 취직했다. 그녀는 "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더 하고 싶어요. 미용실도 차려 나같은 처지의 아이를 돕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서울소년원 고등룡(高登龍)교감은 소년원을 "최고의 학교"라고 자랑한다. 그의 말마따나 소년원은 정규 학교의 교과과정은 물론 영어.컴퓨터.자동차정비.피부미용 등 전문교과 과정까지 운영한다. 소년원생들이 단기간에 검정고시에 패스하고 국가기술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원하면 직접 회사를 차릴 수도 있다. 지난해 6월 설립된 서울창업보육원에서 경영능력과 최신 전문기술 등을 집중적으로 배우고 필요할 경우엔 창업자금도 지원받는다. 지금도 36명의 원생들이 창업을 꿈꾸며 경영능력을 쌓고 있다.

배운 기술을 지역 주민들에게 무료로 강의하고 사랑의 집짓기 운동에 동참하는 등 봉사의 기회도 그들에겐 주어져 있다.

<취재팀> 글=김기찬.이무영.이철재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wolsu@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