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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2동, 강남의 야동 된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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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내의 같은 동(洞)에서도 여야 대선 후보의 승패가 엇갈린 곳이 있었다. 박근혜 후보가 승리한 지역 초등학교가 상대적으로 높은 학업성취도를 기록했다.

서초구에는 평소엔 별 관심을 못 받다가 선거 때면 주목받는 지역이 있다. 양재2동이다.

 새누리당·민주당 할 것 없이 개표가 끝나면 의원·당직자 모두 “거기 몇 표나 나왔어”라며 득표율을 확인한다. 유권자가 많아서가 아니다. 당연히 당락에도 아무 관계없다. 그런데 왜 양재2동에 주목할까.

 사람들은 강남·서초구는 모두 보수정당인 새누리당 텃밭으로 여긴다. 하지만 양재2동은 다르다. 강남지역의 대표적인 야도(野都), 아니 야동(野洞)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새누리당은 강남·서초구에서 절대 우위였다. 하지만 양재2동은 예외였다. 양재2동 주민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에게 7251표(53%)를 던져 줬다. 박근혜(새누리당) 후보는 이보다 500표가량 적은 6341표(46.3%)에 그쳤다. 약 7%포인트 차이다. 이는 서울 전체 득표율 격차 3.3%포인트(문 51.4%·박 48.1%)보다 두 배 이상 크다.

 양재2동의 야권 성향은 견고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뉴타운’을 내세워 서울에서조차 압승을 거뒀던 17대 대선을 제외한 15대(김대중)·16대(노무현) 대선에서도 계속 야권 후보의 손을 들어 줬다. 서초 3구(내곡, 서초2, 서초4, 양재1, 양재2동) 시의원인 최호정(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대선 때 양재2동에 살다시피 했는데도 민주당 후보에게 크게 졌다”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대체 무슨 이유일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가 교육 문제다.

 지난해 대전에서 양재2동으로 이사 온 김소연(36·주부)씨가 답을 알고 있었다. 김씨는 이사 후 한동안 동네에 적응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만나는 이웃마다 조금만 낯이 익기 시작하면 “대출을 더 받아서라도 다른 동네로 이사 가라”고 권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오자마자 떠나라니 참 이상했다”며 “알고 보니 6세 된 아들 걱정이었다”고 말했다.

 양재2동은 사실 선거 때가 아니어도 교육 관계자로부터는 늘 주목받아 온 동네다. 강남교육지원청 등 공교육 관계자들은 양재2동에 대한 관심이 크다. 초등학교 학업성취도 때문이다. 양재2동에 거주하는 1000여 명의 초등학생은 대부분 매헌·언남초등학교로 배정받는다. 지난해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서초구 소재 23개 초등학교 중 20·21위에 나란히 올랐다. <강남통신 2월 20일자 10~11면 참조> 거의 최하위권이다. 일부 학생은 강남구 포이초교로도 배정받는다. 이 학교 역시 강남구 소재 31개 초교 중 학업성취도가 20위로 하위권에 속한다.

 김씨는 “지방에서 살다 보니 별 정보가 없었고 아이가 아직 취학 전이라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게 사실”이라며 “지금 집값과 비슷한 다른 지역을 알아보고 있는데 쉽지 않다”고 한숨을 쉬었다.

 양재2동의 높은 야당 득표율과 초등학생 학업성취도 사이에는 무슨 상관관계가 있을까. 단지 우연일까.

 최명복 서울시 교육위원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강남에서는 같은 동 안에서도 여야 지지율에 따라 그 투표소 내 학교의 학업성취도가 춤을 춘다”며 “강북에서는 보기 힘든 독특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학업성취도가 떨어지는 학교 인근 지역은 야당 지지율이 높다.

 양재2동 외에도 강남구 역삼2동에서 같은 현상을 볼 수 있다. 이곳 초등학생들은 도성·도곡·역삼초교로 배정받는다. 강남구 소재 31개 초교 중 각 학교의 학업성취도는 도성(8위·95.7%), 도곡(19위·90.2%), 역삼(24위·85.8%) 순이다.

 자, 지난 대선 개표 결과를 대입해 보자. 역삼2동은 전체 득표에서는 박 후보가 앞섰다. 하지만 역삼2동 내 6개 투표소 중 한 곳(제4투표소)은 문 후보가 이겼다. 이 투표소 관할지역은 대부분 역삼초교로 배정받는다. 나머지 지역은 도성초와 도곡초교를 배정받는다. 도성초교만 배정받는 2·6투표소에서는 박 당선인이 격차를 두 배 이상 벌리며 완승했다.

  서초구 방배2동도 마찬가지다. 8개 투표소 중 문 후보는 세 개 투표소(1ㆍ2ㆍ6)에서 승리했다. 그런데 이 세 곳 거주자가 배정받는 초등학교는 다른 투표소의 초등학교보다 학업성취도가 9.3% 포인트 낮았다. 인근 방배3동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박 후보가 승리한 투표구에 속한 초등학교는 문 후보가 승리한 투표구의 초등학교보다 10%포인트 가량 학업성취도가 더 높았다.

 문재인 후보가 한 곳의 투표소라도 이긴 지역은 서초구 반포1동·방배1~4동·양재1~2동, 강남구 신사동·논현1동·대치4동·역삼1동·역삼2동·개포2동·개포4동·일원본동·일원 1~2동·세곡동 등 18개 동이다. 총 102개 투표소 중 36곳에서 승리했다.

 이 중 두 곳의 예외가 있었다. 반포1동과 일원본동이다. 반포1동은 3, 4, 5투표소에서 문 후보의 득표가 더 높았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 배정받는 논현·원촌초교는 학업성취도 평가가 10위 안에 들어가는 상위권 학교다. 일원본동 역시 왕북·대모초교로 배치받는데 두 곳 모두 상위 학교다.

 대부분의 교육 전문가는 “부모의 정치 성향과 자녀의 성적은 무관하다”고 단언한다. 김천기 전북대 교육학과 교수는 “부모의 정치 성향과 자녀의 학업성적 간 연관성에 대한 근거는 지금까지 밝혀진 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렇다면 이번 대선에서 나타난 야권 득표율과 초교 학업성취도와의 관계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김수민 CMS대치영재관 원장은 “강남이라고 모두 잘사는 것은 아니다”며 소득이라는 틀로 이 현상을 설명했다. “이 지역은 대개 소득이 낮아 부모가 다른 강남지역처럼 자녀의 학업에 투자를 많이 하기 어려운 형편”이라며 “학원에는 양재동이나 일원동에 사는 애들이 별로 없다”고 덧붙였다. 최호정 의원도 “양재2동은 다른 지역보다 연립주택과 맞벌이 부부가 많은 지역”이라며 “대치동처럼 아이들의 교육에 신경 써 주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경제력의 차이가 현실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지며 ‘강남 내 야도 현상’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서초4선거구(방배2·3동, 서초1·3동)의 김용석 시의원은 “야권 표가 많이 나오는 방배 2·3동은 방배역이 아니라 사당역을 매개로 꾸려지는 생활권”이라며 “정서상 서초구보다 동작구에 가까운 지역”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만약 방배·일원·양재동만으로 표 대결을 벌이면 새누리당은 백전백패”라고 말했다.

 최홍이 서울시 교육위원장은 “강남 내에서도 지역별로 학생들의 학력 격차가 고착화하고 있다”며 “서울시가 양재·수서동 등 교육적 소외지역에 대한 교육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성운·강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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