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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채우고 경찰은 풀어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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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경찰관이 검찰에서 조사받다 달아난 조직폭력배의 수갑을 풀어주고 도피를 도와준 어이없는 사건이 뒤늦게 밝혀졌다.

특히 도주범은 피의자를 구타해 숨지게 한 사고로 서울지검 강력부 홍경령 검사가 옷을 벗은 문제의 '파주 스포츠파 사건'관련자여서 더 충격적이다.

서울지검 형사3부(부장검사 鄭基勇)는 22일 경기도 연천경찰서 왕징파출소 소속 김규식(35)경장에 대해 범인도피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金경장은 지난해 10월 서울지검 강력부에서 조사받다 달아난 스포츠파 조직원 崔모(30.구속)씨의 도피를 도운 혐의다.

◇수갑찬 채 도주=지난해 10월 25일 오후 9시. 파주 스포츠파의 살인사건 연루 여부를 수사하던 서울지검에 붙잡혀온 崔씨가 특조실을 탈출했다.

강력부 수사관이 崔씨의 오른쪽 수갑을 풀어주고 진술서를 받으며 잠깐 조는 틈을 타 왼손에 수갑을 찬 채로 도망친 것이다.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를 빠져나온 崔씨는 옷으로 왼손에 채워진 수갑을 덮은 채 택시를 타고 파주로 향했다.

운전기사의 휴대전화로 통화, 파주에서 전 조직원 許모(40)씨를 만났다.

이어 崔씨는 許씨의 승용차에 옮겨타고 왕징파출소 앞으로 가 金경장을 만났다. 金경장은 崔씨의 고향 선배로 평소 가깝게 지낸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서 주차장서 풀어줘=崔.許씨와 만난 金경장은 파출소에서 갖고온 열쇠로 崔씨의 수갑을 풀려 했으나 열쇠가 맞지 않아 실패했다.

金경장은 다시 許씨의 승용차에 함께 타고 연천경찰서로 향했다. 金경장은 형사계에서 수갑 열쇠를 받아나와 경찰서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崔씨의 수갑을 풀어줬다. 자정 무렵이었다.

달아났던 崔씨는 파주 등지에서 10여일간 숨어지내다 지난해 11월 검찰에 자진 출두했고, 도주 및 도박 개장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수사 확대=검찰은 金씨의 행적에 대한 추가 조사 과정에서 金경장의 혐의를 밝혀냈다고 말했다.

22일 오전 긴급체포된 金경장은 검찰에서 "수갑을 풀어주긴 했지만 崔씨가 피의자 신분이었다는 사실을 몰랐다"며 혐의를 부인하다 崔씨의 자백 내용을 들은 뒤 범죄 사실을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金경장이 오래 전부터 崔씨 등과 가깝게 지낸 사실에 주목, 이전에도 스포츠파의 범죄를 비호해준 사실이 있는지와 배후 세력이 더 있는지 등을 추가 조사 중이다.

검찰은 崔씨를 승용차에 태워준 許씨에 대해서도 이날 같은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전진배 기자allons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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