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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칼럼] 희귀혈액암 골수섬유증이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
원종호 교수(혈액종양내과)

혈액암이라고 하면 흔히 백혈병을 떠올리기 쉽다. 그런데 잘 알려지지 않으나 생명을 위협하는 희귀 혈액암도 많다. 그 중 하나가 골수섬유증이다.

진료실에서 만나는 환자들 대부분은 일반적으로 창백한 얼굴에 빈혈증상으로 심하게 어지럼증을 경험하거나, 건강검진에서 낮은 적혈구수치가 문제되어 병원을 찾았다가 ‘골수섬유증’ 진단을 받은 경우가 많다. 심할 경우 비장 크기가 눈에 띄게 비대해진 상태에서야 병원을 찾기도 한다.
환자들은 너무나 낯선 병명에 당황스럽고 집으로 돌아가 질환과 치료방법을 검색을 해보지만 관련 정보가 너무나 없어 두 번 당황한다. 전 세계적으로 매년 인구 백만명 중 9명정도가 새롭게 골수섬유증 진단받는데, 국내에서는 최근 통계 자료를 찾기 어렵다.

골수섬유증은 이름 그대로 정상 골수가 딱딱하게 굳어지는 섬유화 과정을 거치면서 합병증으로 사망에까지 이르는 희귀 혈액암으로, 혈액세포 안에 있는 신호전달 체계에 이상이 생겨 발병한다.

골수는 우리 몸에 흐르는 혈액의 대부분을 생성하는 조혈기관으로 척추, 갈비뼈, 대퇴부 등 큰 뼈의 중앙에 위치한다. 만약 골수에서 우리 몸에 필요한 만큼의 충분한 혈액을 만들지 못하면 보조 조혈기관인 비장에서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되어있다.
후보선수에게 주전선수들의 역량을 기대하기 어렵듯 이들 보조 조혈기관이 본래 처리 할 수 있는 양 보다 많은 양의 혈액을 생성하게 되면 일반적인 비장크기 보다 15배 이상 비대해지면서 점차 본래의 기능은 망가지게 된다. 정상인의 비장은 성인 손바닥 정도의 크기에 평균 200g으로 작은 우유팩 정도의 무게인데, 골수섬유증 환자의 비장은 1.5kg으로 생수통 두 개의 무게에 육박한다.

또한, 골수섬유증이 발병하면 온 몸의 말초혈관으로 산소와 영양분을 전달하는 적혈구 생성 또한 충분치 않아 만성빈혈이 생기고, 극심한 피로, 급격한 체중감소 등의 전신적인 증상이 나타난다. 그래서 진료실을 찾는 골수섬유증 환자들은 대부분 앙상하게 마른 몸에 배만 불룩하게 나와있는 모습이다.

안타깝게도 골수섬유증 환자들이 겪는 심각한 합병증과 삶의 질 문제에 비해 아직까지 이렇다 할 치료방법이 없어, 진단 1년 이내 고위험군 골수섬유증 환자들의 예상 생존기간 중앙값은 16개월, 중간 위험군의 경우 35개월로 채 3년이 되지 않는다.

골수섬유증의 원인은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는 않았다. 2005년 무렵 혈액생성에 관여하는 JAK2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골수섬유증을 유발하는 것으로 확인하였으나, 모든 골수섬유증 환자들이 이 돌연변이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골수섬유증의 완치를 위해 더 많은 연구와 임상현장에서의 노력이 필요하다.

20여년 전부터 골수섬유증 진단은 가능했으나 동종조혈모세포이식 외에는 변변한 치료방법이 없었다. 동종조혈모세포이식을 받으면 완치도 가능하나 이환율과 이식 관련 사망률이 상당히 높은데다가 이식을 견딜 만큼 젊고 체력이 양호한 환자는 전체 골수섬유증 환자의 5%에도 못 미친다.

지금까지의 골수섬유증 치료는 병의 근본적인 원인을 치료하기 보다는 과도한 백혈구 수와 비장비대증을 조절하는 오래된 백혈병 약을 쓰거나, 비대해진 비장을 절제하는 등 증상개선에 중점을 둔 대안적인 치료법이 전부였다. 다행히 최근 골수섬유증의 원인인 JAK변이를 억제하면서, JAK변이 유무에 관계없이 임상적 효과가 확인 된 신약이 식약청 승인을 받았다. 조만간 국내 골수섬유증 환자들도 최적의 치료를 받아 삶의 질을 회복하고 생존기간 연장에 도움을 받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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