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녀도 아닌, 성녀도 아닌, 카트린M의 섹스 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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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린M의 성생활』(이세욱 옮김, 열린책들)이라! 오호, '성'생활이라고? 그렇다면 야하겠는걸? 어디 야한 부분이 어디에 숨어있는지 찾아볼까?"

카트린 밀레의 『카트린M의 성생활』을 이런 식으로 읽게 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꽤 많을는지도 모르겠다. 야한 부분이 어디에 숨어있는지 찾기 위해 책의 중간부터 들추는 사람이 꽤 많을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애쓰며 찾을 필요 없다. 『카트린M의 성생활』의 모든 페이지에는 벌거벗은 남자와 벌거벗은 여자가 등장하며 그들은 섹스를 나눈다. 아무렇게나 책장을 펼쳐보시라. 농담이 아니다.

"내가 숨을 쉬듯 나는 섹스를 한다"
"어쩌다 뜻하지 않은 순간에 키스나 애무를 받게 되면, 그 성적인 쾌감은 더없이 짜릿했다. 나는 그럴 때 느낀 오르가슴을 대단히 선명한 기억으로 많이 간직하고 있다"(115쪽) "한껏 부풀어 오른 음경이 내 입 안에 그득할 때, 나는 얼근한 취기 같은 황홀감에 젖는다" (194쪽)

"나는 남자의 성기를 빠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내가 그 행위에 입문한 것은 귀두를 아래쪽의 다른 입구로 이끄는 법을 배운 것과 거의 같은 시기였다" (241쪽) "나는 아주 규칙적으로 수음을 한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났을 때나 낮 동안에, 벽에 등을 기대고 몸을 약간 숙인 채 다리를 벌리고 한다" (291쪽)

자, 이제 믿겠는가? 그리고 만족하시는가? 하지만 이런 식으로 아무렇게나 책장을 펼치며 읽는 것은 글쓴이 카트린 밀레에 대한 모욕이며 책을 읽는 사람에게도 수치스런 경험이 될 것이다. 이 책은 포르노가 아니다. 이 책을 포르노처럼 읽지 않기 위해선 책의 첫 부분부터 차분히 시작해야 한다.

그렇게 읽었을 때 아주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글쓴이가 호들갑을 떨지도 않을뿐더러 지나치게 차분한 목소리로 '섹스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소설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는 이 책을 두고 '지성적이고, 가차없으며, 비범하게 솔직한 책'이라 평했으며 『르몽드』지는 '훌륭한 책, 잘 씌어진, 우리를 완전히 아연실색케 하는 책'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글쓴이 카트린 밀레는 프랑스의 전위적 미술잡지 『아트프레스』의 편집장이자 베니스 비엔날레, 상파울루 비엔날레 등의 큐레이트를 맡기도 했던 현대미술평론계의 거장이다.

책은 네 장으로 나눠져 있는데 그 소제목들 역시 굉장하다. 제1부는 「수」, '얼마나 많은 남자와 잘 수 있을까'를 요약한 제목이다. 2부 「공간」은 '얼마나 다양한 장소에서 섹스할 수 있을까'에 대한 제목이며 3부 「내밀한 공간」은 카트린 밀레가 선호했던 섹스공간을, 4부 「세부묘사」는 섹스경험의 노하우를 묘사한 제목이다.

섹스 장면의 상세한 묘사와 남자를 대할 때의 글쓴이의 쿨한 태도가 가끔 선정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지만 『카트린M의 성생활』은 기본적으로 철학적인 향기를 품은 책이다. 하지만 머리로 하는 철학은 아니다. 카트린 밀레는 남자들과 섹스를 하면서 몸으로 철학을 하고 있다. 꼼꼼한 독자들이라면 아마도 다음과 같은 문장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애무를 받아들이기 위해 내 몸을 단박에 쭉 뻗어 본 적이 없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팔을 벌려 가슴을 불룩 나오게 하거나 허벅지를 활짝 열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소녀 시절에 자위 행위를 숨기려다 내 몸에 배어버린 자세, 즉 반사적으로 잔뜩 옹송그리는 자세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시간. 그리고 내 몸을 일거에 온전히 보여주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에 필요한 시간 말이다. 나에게는 언제나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235쪽)

"속옷을 입지 않는 나의 행동에는 분명히 하나의 원칙이 작용하고 있었다. 곧, 자유로운 몸이란 장식에 신경을 쓰지 말아야 하며, 레이스 속옷을 보여 주거나 브래지어 훅 단추를 조작하는 것과 같은 예비 단계를 거칠 필요가 없이 언제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원칙 말이다. 요컨대, 나는 색정을 품은 남자들이 시선으로 나를 발가벗기는 것은 잘 견디지 못한다. 그런 시선을 견디느니, 차라리 단 한 번의 동작으로 정말 발가벗는 편이 낫다."(256쪽)

위선적인 남성 독자들이여, 내숭 떠는 여자 독자들이여
카트린 밀레와 남편 자크 앙릭은 20년 결혼생활동안 각자의 성생활을 철저하게 지켜주고 있다. 남편 앙릭 역시 자신의 성경험을 출간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여태껏 한 사람의 삶과 글이 이토록 솔직한 적이 있었던가? 이토록 침착하면서도 과감한 적이 있었던가? 『르몽드』의 필립 솔레르스가 쓴 서평은 문제의 핵심을 가장 정확하게 짚고 있는 듯하다.

"위선적인 남성 독자들이여, 내숭 떠는 여자 독자들이여, 이 점을 차분하게 인정하자. 이 여자는 그대들을 위해 스스로를 해방시킨 것이다." (김중혁 /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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