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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로토복권 이권싸움' 꼴불견

중앙일보

입력

경제학 교과서에는 기업과 정부의 경제활동을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 중 하나로 '이윤 동기'를 든다.'기업의 목표=최소 투자에 최대 이익' '정부의 목표=공익(公益)'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26일 민주당과 정부간의 당정회의는 이런 고전적 정의가 다 맞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줬다.판매 예상액이 1조5천억~2조억원으로 추산되는 로토복권의 도입을 놓고 정부 부처들이 공익보다는 이권을 앞세우며 다툼을 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싸움의 시작은 건교부.행자부.과기부.노동부.산림청.중소기업청.제주도 등이 연합해 '온라인 연합복권'을 결성, 내년 9월까지 로토복권을 도입하겠다고 나서면서부터였다. 그러자 이 연합에서 제외된 문화부가 반발했다. "월드컵 유치자금을 충당하려고 토토 체육복권에 거액을 투자했는데 로토복권이 들어오면 다른 복권은 다 망한다"는 논리였다.

어느쪽이 맞는지는 두고볼 일이다.로토복권은 전세계 복권시장의 60%를 장악했고 미국과 유럽.일본에서도 판매 중이니 언젠가는 우리나라에도 상륙하는 게 대세일 것이다.

문제는 이런 사업을 도입할 때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이 무엇이냐는 점이다.

미국 텍사스주는 로토복권 도입에 앞서 주민투표를 실시해 찬반을 물었다. 복권은 세금은 아니지만 주로 서민의 주머니를 터는 '준조세'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다른 주들 역시 복권 수익금을 대부분 공공사업에만 쓰게 하면서 철저히 감독하고 있다.

하지만 26일의 당정회의에선 이런 문제는 애초부터 논의대상이 아니었다.1조5천억원이 넘는 준조세가 도입되는 셈인데 공청회를 한번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무시됐다. 복권사업을 총괄할 법이 없어 뻔히 부작용이 예상된다는 점도 외면당했다.

"공익 따위는 처음부터 고려대상이 아니었습니다.한쪽에선 '빨리 도입하자'고 목소리를 높이면 다른쪽에선 '안된다'며 버티는 식이죠."

이날 당정회의에 참석했던 한 관계자는 익명을 전제로 "로토복권이 도입되면 사업을 추진한 7개 부처는 가만히 앉아 해마다 수백억~수천억원의 배당금을 받게 될 것"이라면서 "부처간의 힘겨루기와 이기주의만이 춤추더라"고 전했다.

김종혁 정치부 기자 kimch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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