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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 역외탈세와 전면전 돌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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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수백억원대 ‘역외탈세왕’ 조사가 여러 건 진행 중이다. 이게 다가 아니다. 제도적 기반이 갖춰진 만큼 역외탈세와 제대로 한번 붙어보겠다.”(국세청 고위 관계자)

 국세청이 역외탈세와의 전면전에 돌입했다. 역외탈세는 세원 발굴은 물론 국부 유출 엄단을 위해서도 근절해야 한다는 게 국세청의 인식이다. 수천억원의 세금을 포탈한 혐의로 기소된 ‘선박왕’ 권혁 시도상선 회장이 최근 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면서 국세청은 한층 자신감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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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말 국세기본법 및 국제조세조정법 개정으로 역외탈세를 잡아내기 위한 법적 장치가 크게 강화됐다. 우선 올해 50억원을 초과하는 해외 금융계좌를 보유하고도 내년 6월에 신고하지 않으면 2년 이하 징역에 처해진다. 해외 계좌 미신고자에 대한 징역형 도입은 처음이다. 올해는 2012년 보유분을 신고하지 않는 경우 인적사항 공개가 가능해졌다. 신고 대상 계좌도 크게 넓어졌다. 지금까지는 현금과 상장주식만 신고했지만 앞으로는 채권, 펀드도 신고해야 한다. 국세청 관계자는 “해외 계좌 신고를 피하기 위해 현금과 주식을 채권이나 펀드로 돌려놓는 관행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 해외 금융계좌 은닉을 제보하는 경우 포상금 한도는 현행보다 10배 많아진다(1억원→10억원).

 역외탈세 정보 수집을 위한 특수활동비도 지난해 20억원에서 올해 45억원으로 상향됐다. 이 활동비는 해외에 숨겨져 있는 각종 금융계좌 정보를 은밀하게 구입하는 용도로 주로 쓰이며, 영수증이나 지출내역 증빙이 필요 없다.

 국세청은 ‘지구촌 비밀 금고’인 스위스 조세당국과의 국제 공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지난해 7월 조세조약 발효를 계기로 스위스 당국에 계좌번호만 제시하면 금융 정보를 받아 볼 수 있게 됐다”며 “재산 은닉 혐의가 있는 계좌 정보 여러 개를 이미 스위스에 보내놓은 상태로 조만간 구체적인 금융 정보가 올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해외 금융계좌 신고 규모는 전년보다 62%나 늘어난 18조6000억원에 달해 일반 예상을 뛰어넘었다. 더구나 개인 스위스 계좌 신고 금액은 1년 사이 13배나 증가했다(1003억원).

 그러나 국세청은 거액 자산가들이 해외로 빼돌린 자산과 탈세 중에서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국세청은 해외 금융계좌 미신고자 가운데 역외탈세 혐의가 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세무조사를 강도 높게 진행하고 있다.

 국세청은 특히 권혁 시도상선 회장의 법정구속을 계기로 그동안 세금을 탈루해온 이들이 자발적으로 세금을 내는 ‘알 카포네 효과’가 생겨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권혁 회장에 대한 실형 선고는 역외탈세를 성실한 납세자들에게 박탈감을 안겨준 범죄 행위로 판단한 상징적 판결”이라며 “역외탈세에 대한 법원의 엄벌 의지가 분명해진 만큼 그동안 해외에 자산을 숨겨두고 탈세해온 이들이 스스로 세금을 납부하는 풍토가 정착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아직 역외탈세 규모와 해외 은닉자산 규모는 정확히 드러나 있지 않다. 비정부기구(NGO)인 조세정의네트워크는 한국의 해외 은닉자산 규모가 7790억 달러(약 860조원)에 달한다고 추산하고 있으나, 국세청은 과대 계상됐다는 입장이다.

 세계 각국에선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역외탈세 단속 수위를 크게 높이고 있다. 미국의 경우 2009년 이후 역외탈세 적발과 해외 비밀 계좌 자진 신고를 통해서만 약 100억 달러(약 11조원)의 세금을 거둬들였다. 우리나라도 2010년 5019억원이었던 역외탈세 추징액이 2011년 9647억원으로 대폭 늘었다.

  이상렬 기자

◆ 알 카포네 효과

1920년대 미국 시카고의 갱단 두목이었던 알 카포네(사진)는 31년 연방소득세법 위반으로 기소돼 11년형을 선고받고 알카트래즈 감옥에 수감됐다. 이후 탈세범에 대한 강력한 처벌에 놀란 범죄자와 시민이 체납된 세금을 납부하기 시작한 것을 ‘알 카포네 효과’라고 한다. 알 카포네가 구속된 31년에만 전년의 두 배가 넘는 100만 달러 이상의 체납 세금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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