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거리 시내버스 사라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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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20일 오후 10시 서울 금천구 시흥동 기아대교 옆 버스정류장. 종로구 종각 근처 어학원에 다녀오던 이선희(33·여)씨가 버스에서 내렸다. “앞으로 저녁에 도심까지 다닐 일이 걱정입니다.” 집과 회사가 시흥동 근처인 이씨는 퇴근 후 150번 버스를 타고 종각까지 한 번에 오갔다. 그런데 다음 달 19일부터 이 버스 운행이 중단된다는 안내문을 봤기 때문이다. 이씨는 “150번이 없어지면 종각역에서 1호선을 타고 금천구청역까지 갔다가 마을버스를 타고 와야 한다”며 “150번은 대학로·종로 도 지나고 주말엔 등산복 입고 도봉산 가는 승객도 있는데 일방적으로 없애면 어떻게 하느냐”고 불만스러워했다.

 서울 시내버스 중 최장거리 노선이 사라질 예정이다. 이씨가 이용해 온 150번이다. 이 버스는 서울 도봉구 도봉산역부터 기아대교까지 왕복 74㎞ 구간을 운행한다. 정류장만 126곳. 중간에 세종로, 서울역, 노량진, 구로디지털단지역 등을 거쳐 기아대교에서 회차한 뒤 같은 코스를 거슬러 오른다. 그야말로 서울 남북을 가로지르는 것이다.

한 번 운행에 기본 4시간, 길이 막히면 5시간도 걸린다. 강남터미널에서 고속버스로 대구나 광주까지 가는 시간(평균 3시간20~40분)보다 길다. 서울시가 이 노선을 단축해 구로구 디지털단지역까지만 운행하도록 한 것이다. 도심을 잇는 최장거리 시내버스가 없어지게 되자 금천구 시흥동·독산동,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 등 단축구간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20일 150번 버스에서 만난 김모(45·시흥동)씨는 “2004년 버스 노선 개편 때부터 10년 가까이 운행해 온 버스를 갑자기 없애면 어떻게 하느냐”며 “특히 150번은 막차 시간이 늦어 심야에 시흥대로 쪽에서 도심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버스였다”고 말했다. 한국스마트카드가 집계하는 노선별 일 평균 이용객 수에서 150번은 3만4847명(2월 둘째 주 기준)으로, 전체 396개 노선 중 3위를 기록했다.

 승객이 많은데도 서울시가 일부 노선을 없앤 것은 운행시간이 너무 길어 운전기사들의 피로가 쌓이고 안전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해당 버스를 운전하던 한 기사(59)는 “서울시 버스 중 가장 힘든 노선”이라며 “거리는 긴데 정해진 운행시간이 있어 밥 먹을 시간도 없다”고 말했다. 이날 버스를 몰던 기사는 회차지인 기아대교 정류장 인근에서 잠시 내려 도로변에 소변을 본 뒤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시는 당초 종로를 종점으로 150번 구간을 두 개로 나누려 했지만 시흥동 쪽에 차고지가 없어 계획을 취소했다. 공성국 서울시 버스정책과 노선팀장은 "차선책으로 군포~노량진 구간을 운행하는 5531번 버스를 증차해 공백을 메울 생각이었지만 경기도 지역 업체가 승객을 뺏긴다고 반발해 경기도가 난색을 표했다”며 “현재로선 뾰족한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조한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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