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두순 기사에 음란광고 보고 충격 받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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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현 대표는 “한국은 인터넷 발달만큼 정보공해도 압도적으로 많다”고 말했다. [강정현 기자]

“불링 몬스터(bulling monster)는 입에서 불을 뿜는 괴물입니다. 이 괴물의 불길에 중독된 사람은 그의 하수인이 돼 다른 사람을 따돌리는 병에 걸리죠. 이런 스토리들이 아이들 마음 속에 각인되면 사이버 왕따도 줄어들 거라고 봐요.”

 불링몬스터 이야기는 ‘인폴루션 제로’ 박유현(38) 대표가 생각하는 사이버 왕따 퇴치법 중 하나다. ‘인폴루션’(infollution)은 정보(information)와 공해(pollution)의 합성어. 인폴루션 제로는 전 세계 아이들을 정보공해로부터 자유롭게 해주겠다는 목표로 인성교육 콘텐트 생산과 캠페인을 하는 비정부기구(NGO)로 현재 싱가포르에 기반을 두고 있다.

박 대표는 이 단체를 이끌며 전 세계 청소년을 대상으로 ‘디지털 영웅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 공로로 지난해 11월 유네스코 정보통신기술(ICT) 교육상도 받았다. 프로젝트로 만든 포털과 게임은 3월 말 동남아시아와 미국에서 선보인 데 이어 조만간 국내에도 내놓을 계획이다.

 박 대표는 공해성 콘텐트보다 더 재밌는 인성교육 콘텐트만이 아이들을 정보공해에서 떼 놓는 해법이라 본다. 메시지가 아무리 좋아도 재미가 없으면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 박 대표는 “아이들에게 ‘컴퓨터하지 말라. 악플달지 말라’고 강요해봤자 별 소용이 없다. 아이들은 지식보다 스토리나 놀이에 반응한다”고 강조했다. ‘어릴 때부터 인터넷을 접하는 요즘 아이들에게 박 대표의 전략이 너무 순진한 건 아니냐’는 질문엔 “처음부터 대상을 주로 5~7살 아이 정도로 하고 있어 큰 문제가 없다”고 답했다.

 박 대표의 자신감은 ‘인폴루션 제로’에서 일하는 인재들로부터 나온다. 대학교수 출신의 아동심리 전문가와 게임 개발자, MIT·하버드를 졸업한 미국인 시나리오 제작자 등이 박 대표와 함께 일한다. 박 대표 자신도 서울대 기상통계학과를 졸업한 뒤 국비장학생으로 하버드대 바이오통계학 석·박사 학위를 받은 재원이다. “데리고 오고 싶은 분은 직접 찾아가 부탁하죠. ‘조지 클루니 같은 캐릭터 한 번 만들어보자’며 유명 게임회사 직원을 데려온 적도 있어요.”

 그가 NGO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2010년 1월이다. 우연히 본 인터넷 광고가 계기가 됐다. 그는 “아동 성폭력 살해범인 조두순 사건 기사 하단에 음란 광고가 달린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 처음엔 박 대표의 자녀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만들려고 시작한 작업이라고 했다.

 열성적으로 활동했지만 전시회 한 번 여는 것도 쉽지 않았다. 끈질지게 요청해 2011년 인터넷진흥원으로부터 8000만원을 지원받았다. 그리곤 첫 전시회를 열었다. 얼마 뒤 박 대표는 난양공대 교수로 부임한 남편을 따라 싱가포르로 이주했다. 마침 전담 위원회를 만들 정도로 정보공해에 큰 관심을 갖고 있던 싱가포르 정부가 박 대표의 활동에 솔깃해했다. “한국에서 첫 단추를, 싱가포르에서 두 번째 단추를 꿴 셈이죠.”

 박 대표는 인폴루션 제로의 향후 활동과 관련해 “지속가능한 사회적 기업 등으로 발전시켰으면 좋겠다”면서 “일단은 사이버 한류라고 불러도 될 만큼 훌륭한 콘텐트를 만드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했다.

글=한영익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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