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부정하고 재발견하고…

중앙일보

입력

21세기 한국 출판가와 지식사회에서 퍼올려진 화두 중 하나는 오강남 교수의 『예수는 없다』(현암사) 였다.

전문 분야의 학자가 쓴 책으로 이만큼 대중화된 것도 없을 것이다. 그 동안 이 책에 대한 반응은 다양했다. 극렬 반대 성향에서부터 열렬히 환영하는 성향에 이르기까지 독자층은 다양했다.

그런 포폄 속에서 많은 독자층을 확보해, 2001년 한 해의 가장 영향력 있었던 서적으로 손꼽기에 부끄럼없는 책이 됐다. 종교적 성향을 떠나 교양 일반으로 읽어도 유감이 없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예수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예수는 있다"를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가 반면교사(反面敎師) 의 효과를 노린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작금의 기독교회, 그리고 그 속에 예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이 책은 바로 그 곳에 예수가 없다, 즉 있어야 할 "예수가 없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그래서 이 책은 사실 "예수는 없다"가 아니고 "예수가 없다"이다. 책을 읽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말의 토씨 변화가 주는 의미편차를 느껴보라.

저자 오강남 교수의 말을 직접 들어 보면 오랫동안 기독교의 교리에 회의를 가지고 고민하던 사람들이 이 책에서 기독교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저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고 한다. 의미있는 역설이다. 비단 기독교뿐 아니라 불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인들에게도 귀감이 되는 대목이다.

선불교는 일찍이 "길을 가다 부처를 만나면 그를 죽여라"라 했다. 말을 바꾸어 기독교인들이 이런 소리를 할 수 있는가? 불교가 이런 소리를 했다고 하여 부다가 죽은 것도 아니고 불교가 사라진 것도 아니다. 도리어 불교는 가시적인 부처의 죽임을 통해 다시 살아난 것이다.

교양서로 유감없는 이 책은 실로 한국에서 행하는 종교행위의 정체성을 묻는 묵직한 질문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있는 작업이 국내에서 이뤄지지 않고, 외국에 거주하는 한국 출신 종교학자의 손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도 흥미롭다.

한국 사회의 '감시체제'속에서 그가 상대적으로 자유로웠기 때문에 가능한 저술활동이었다. 이제 오교수가 터놓은 길을 따라 보다 깊숙하고, 대중적으로 의미있는 저술들이 내년에 더 나오길 기대한다.

김상일 〈한신대학교 철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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