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 값 줄줄이 올라…대형마트·식품업체 담합 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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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가 식품업체들을 대상으로 직권조사에 착수한 가운데 20일 오전 서울 한 대형마트에서 직원이 소비자에게 김치를 판매하고 있다. [뉴시스]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가격을 올린 식품업체 10여 곳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직권조사에 착수했다.

 20일 공정위와 식품업계에 따르면 조사 대상은 롯데제과·해태제과·CJ제일제당·오리온·대상·해표·풀무원·사조·남양유업·동서식품 등 대형 식품회사들이다. 18일 시작된 조사는 21일까지 계속될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업체들에 따르면 공정위는 생산현장을 예고 없이 방문해 대형마트와의 거래 자료를 파악해 갔다. 대형마트에 공급하는 물품을 중심으로 관련 업체들이 가격을 담합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공정위는 이 과정에서 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 같은 대형마트의 불공정행위도 확인할 방침이다. 우월적 지위를 내세워 가격담합을 유도하거나 납품가를 낮추라고 요구했는지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공정위가 대규모 조사에 나선 것은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지난해 말부터 주요 식품값이 일제히 오르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올 초 밀가루를 신호탄으로 포장김치·두부·콩나물·간장·된장 가격이 줄줄이 올랐다. CJ제일제당·대한제분·동아원 등이 지난달 초 밀가루 가격을 일제히 8.6~8.8% 인상했다. 포장김치업계 1위인 대상Fnf가 14일을 전후해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포기김치 50여 개 품목의 가격을 평균 7.6% 인상했다. 풀무원은 두부와 김치 가격을 올렸고 CJ제일제당·샘표식품·대상 등은 간장과 된장·고추장 등 장류와 조미료 가격을 평균 7% 안팎씩 인상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쌀이나 밀 등 곡물가가 올랐고 각종 용기, 물류비 등 안 오른 게 없다”며 “원가 인상 요인이 워낙 커서 가격을 올리지 않고 배길 재간이 없다”고 말했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지금 올리지 않으면 언제 올릴 수 있을지 모른다는 위기감도 작용한 것 같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에 앞서 지난해 말 대선을 전후해 주류와 라면·과자·음료 가격이 올랐다. 하이트진로가 소주 ‘참이슬’ 가격을 8.1% 인상했고 롯데주류 역시 ‘처음처럼’ 출고가를 8.8% 올렸다. 또 라면·사이다·우유·초코파이·썬키스트 등 품목을 가리지 않고 일제히 가격이 인상됐다. 소비자단체들은 식품업체들이 정권교체기 당국의 물가관리가 허술한 틈을 타 잇따라 가격 인상을 감행했다며 곱지 않게 보고 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원가분석을 통해 부당하게 가격을 올린 기업 명단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주홍 녹색소비자연대 사무국장은 “식품업체들은 가격을 올리면서 원재료 가격 상승 때문이라고 강변하지만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원가절감 등의 노력 없이 서민들에게 고통을 그대로 전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가를 관리하는 정부 당국도 긴장하고 있다. 가계 소비가 위축된 가운데 물가가 오르면 소비를 더욱 위축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는 국제 곡물가격이 지난해 9월 이후 하락세를 보이는 데다 최근 원화 강세가 나타나 수입물가가 오를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공정위 직권조사에 이어 부당한 이득을 취했는지 살펴보게 될 국세청 사후조사도 부당한 가격인상을 억제하는 수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김동호 기자, 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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