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난곡' 1년간 밀착 취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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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가명) 이는 집 앞의 판자집 봉제 공장에서 일하는 엄마 대신 집안 일을 도맡아 하는 초등학교 5학년생이다.

지긋지긋한 가난 때문에 하늘을 원망한 적도 많았지만, 어느새 정이 들어 버린 마을. 그러나 거세게 불어닥친 재개발 바람에 그의 가족은 마을을 떠나야 하는 운명에 처했다. 정선이는 기억 속에 동네를 담아 두려고 매일 동네 지도를 그리고 있다.

서울특별시 신림7동 산 101번지 난곡.

국내 최대 규모의 달동네인 이곳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재개발 때문이다.

KBS 일요스페셜은 이 시대 마지막 달동네로 기록될 이곳의 구석진 삶을 카메라에 담아 오는 23일 밤 8시 '사계-난곡, 마지막 달동네 1년의 기록'이란 제목으로 방영한다.

1967년 정부가 서울 시내 판자촌을 철거하면서 자연스럽게 조성된 난곡은 한때 2천5백여 세대가 모여 살던 곳. 그러나 현재 이 마을엔 갈 곳 없는 세입자 5백여 세대만이 생존권 투쟁을 외치며 추위와 싸우고 있다.

제작진은 난곡 주민들이 30여년 간 머물렀던 밑바닥 삶의 궤적을 추적한다. 특히 재개발 압력에 어쩔 수 없이 이곳을 떠나는 사람들의 지친 모습을 영상에 담았다.

92년부터 10년째 난곡을 연구하고 있는 일본 신슈 대학의 가토 교수가 남겨 놓은 한국 달동네의 기록도 공개한다. 가토 교수는 난곡을 '가난한 사람의 야전병원'으로 묘사했다. 가난에 지친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어느 정도 가난이 치유되면 떠나보내는 역할을 이 지역이 담당했다는 설명이다.

제작진은 촬영을 위해 지난 봄부터 최근까지 난곡 주민들과 함께 했다고 한다.

제작진은 묻는다. 그 많은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라고. 달동네는 없어져도 가난한 사람이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조대현 책임 PD는 "개발과 발전만을 좇아 살아온 우리의 삶을 한번쯤 되돌아 볼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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