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성급한 주5일 근무제안

중앙일보

입력

주5일 근무제 도입을 위한 정부 입법안이 19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보고됐다. 일단 주5일 근무제를 향한 닻이 드디어 올라간 셈이다.하지만 노사간 합의 없이 정부 단독 입법으로 갈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점에서는 아쉬움이 크다.

정부는 "노사간 합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아 달리 방법이 없었다"고 해명한다. 그러나 정부가 일종의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현 정부가 가장 중요한 노동개혁과제로 선정한 주5일 근무제가 내년에도 도입되지 못하면 현 정부 아래서는 실행이 어렵지 않겠느냐"는 노동부 관계자의 토로에서 이런 분위기가 느껴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부 입법안이 졸속으로 만들어졌다는 비판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있다. 심지어 "정부가 과연 주5일 근무제를 실시할 의지가 있는가"라는 의구심마저 불거지고 있다.

대통령이 누차 주5일 근무제 실시를 강조해오던 상황에서 정부로서도 뭔가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야 했고, 그래서 서둘러 안을 만들지 않았느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국회 통과를 강하게 밀어붙이려는 의지 보다는 국회에 던져만 놓는 면피성이 강하다는 얘기다.

사실 정부 입법안은 노사정위 공익위원들이 지난 10월 제시한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수준이다. 한국노총은 공익위원 안이 처음 제시됐을 때 "짜집기 안이다"라며 강하게 반발,결국 노사정위의 협상테이블을 떠난 바 있다. 그래서 예상했던 대로 노조측의 반발이 뒤따르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경영계마저 정부 단독입법을 반대하고 있어 정부를 사면초가(四面楚歌)의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정부 안은 휴가 일수를 제외하면 경영계의 입장을 거의 반영한 것인데 이해가 안된다"고 볼멘 소리를 했다. 노동계의 반발은 예측했지만 경영계까지 반대입장을 표명할 줄은 몰랐다는 순진한 고백인 셈이다. 법안을 만드는데만 급급했지 그 파장 등에 대한 고려는 부족했다는 얘기로도 들린다.

물론 주5일 근무제는 시대의 대세이며 언젠가는 실시되어야 한다.하지만 노사가 모두 반대하는 안을 법으로 강제했을 경우 엄청난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지금은 가장 합리적인 방안을 찾을 때까지 정부는 물론 노사가 모두 인내심을 발휘해야 할 때다.

김기찬 사회부 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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