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속의 행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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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문이 있으면 반드시 자물쇠가 있기 마련이다. 문이란 개방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면서도 또한 닫아 두어야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모든 국가정책에는 반드시 비밀이란 것이 따르기 마련이다. 정책은 원래 국민대중의 공동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있는 것이면서도, 만인에게 다 알려서는 안 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민주정치의 개방적인 낙원이라는 미국에서도 비밀의 자물쇠는 도처에 있다. 「펜터건」하나만 보더라도 1년에 비밀문서를 보장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돈이 무려 5천만불, 그러니까 우리 전 국가예산의 10분의 1이 비밀문서를 지키기 위한 「자물쇠」값으로 사용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역시 문의 본 기능은 닫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여는데 있는 것이며, 정치의 본 구실은 숨기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알리는데 있다. 정부는 때론 여성과 같아서 너무 많은 비밀을 가지고 있으면 믿음직스럽지가 않다. 여성이나 정부나 남몰래 감추는 비밀이 있을 때 항상 위험한 짓을 저지르고 있을 경우가 많은 까닭이다.
정부는 금년이 단군 이래의 대풍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말을 듣고 국민들의 기뿐 웃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대만에서 쌀을 수입해 들여온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아니, 벌써 수입해온 쌀이 오늘 부산에 입항했다는 것이다. 그 동안 모르고 있던 것은 국민들 뿐 이었다. 쌀을 수출까지 하리라던 정부, 단군 이래의 풍년가를 부르던 정부, 쌀은 얼마든지 있어 무제한 방출하리라던 정부…. 그러나 똑같은 정부에서 이제는 쌀을 긴급수입해야 된다니, 모든 일이 호도 속 같기만 하다.
언제부터인가 「밀고 나가기만 하면」잘하는 정치라는 미신이 이 땅을 지배하고 있다. 과실이 있고 실책이 있어도, 밀고만 나가면 된다는 「불도저」가 정치의 미덕처럼 숭앙 되고 있다.
밀고 나가다 보면 독선에 흐르고, 독선은 또한 자기만이 아는 비밀에 의지하기 마련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예컨대 『나 혼자만이…』라는 유행가는 「사랑」할 때나 부르는 노래이지 중대한 국가의 일을 맡은 행정관의 18번 곡목이 되어서는 안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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