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간 27억' 퇴임후 떼 돈 번 남자 알고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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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성을 인선의 우선 기준으로 세운 박근혜 당선인은 차관·법조·군 장성 등을 지낸 전직 관료들을 대거 기용했다. 그러나 이들 고위 공직자 출신 상당수가 공직을 떠난 뒤 재산이 크게 불어나는 패턴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공직에 몸담고 있는 동안엔 나름대로 자기 관리를 해오다 퇴임한 후 공직에서 쌓은 업무 노하우와 인맥 등 공적 자산을 앞세워 대형 로펌이나 기업체·연구소 등 직무와 유관한 기관에 재취업하면서 큰돈을 벌어들인 것이다. 과거 법조인 출신들이 퇴임 후 변호사를 개업해 재판 등에서 유리한 판결을 이끌어내면서 큰돈을 벌어들여 논란이 됐던 전관예우 관행이 법조계뿐 아니라 경제관료·군의 고위직 등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고위 공직자들이 유관 기관·업체에 재취업해 거액의 연봉을 받는 대가로 사실상의 로비스트 역할을 해온 것 아니냐는 의혹도 받고 있다.

 문제는 재취업한 고위직 출신 인사들이 수년간의 공백을 거친 뒤 총리·장관 후보자나 청와대 수석 내정자로 공직에 다시 기용되고 있는 현상이다. 이들의 재산 형성이 불법은 아니지만 공직자로서의 윤리의식이나 도덕성엔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 등 야당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신(新)전관예우형 재산증식 문제를 쟁점화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윤태범 소장은 “고위 공직자들에게 대한민국은 퇴직 관료의 천국 ”이라고 말했다.

 정홍원 국무총리 후보자는 1995년 재산등록 당시 신고액이 4억9300여만원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국회에 제출한 재산신고 내역을 보면 19억8300여만원으로 18년간 14억원 이상 늘었다. 2006년 중앙선관위 상임위원 퇴직 당시(11억3700여만원)를 기준으로 하면 8억여원이 불었다. 정 총리 후보자는 공직에서 물러난 뒤 2년 동안 법무법인 로고스에서 6억7000만원을 받았지만 2008년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에 취임했다. 다시 공직으로 돌아간 것이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후보자는 마지막 공직이던 세무대학장 시절(2000년) 8억6800여만원을 신고했다. 공직 퇴임 후 2009년 한국개발연구원장으로 복귀했을 땐 36억3000여만원으로 증가해 있었다. 9년간의 퇴임 기간 중 27억여원이나 늘어났다.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의 재산도 공직 마지막 해인 2006년 7억5200여만원에서 올해 15억2000여만원으로 두 배 가까이로 급증했다.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2006년 8억8700여만원이던 재산이 2008년 예편을 앞두고 18억4000여만원으로 뛰었다가 올해 21억3000여만원이 됐다. 합참 전력기획부장을 지냈던 김 후보자는 예편한 뒤 2년 후인 2010년 무기중개업체 유비엠텍 고문으로 재직해 2년간 2억1000여만원을 받았다. 전력기획부장은 군의 전력증강계획에 관여하는 자리고, 유비엠텍은 K-2 전차의 파워팩(배터리+엔진) 납품을 추진했던 무기거래업체다.

  유관 업체에서 거액의 연봉을 벌어들인 후 다시 정부직에 기용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경실련 정치입법팀 김상혁 간사는 “퇴임 후 유관 기관 등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인사를 다시 지명하지 않아야 하며 국회에서도 법안 추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전관예우를 누리며 회전문을 타고 되돌아오는 특혜를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채병건·박민제·손국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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