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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산업체까지 ‘별’ 모시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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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재직 중엔 퇴임 후를 고려해 특정 업체에 편의를 제공하고, 물러나면 유관 기관에 취업해 재산을 증식한다. 공직 후보자로 지명되면 갑자기 불어난 재산이 부메랑이 돼 발목을 잡는다. 전관예우(前官禮遇) 관행을 통한 악순환의 사이클이다.

 당초 이 같은 전관예우는 법조계나 경제관료 출신의 고질병으로만 인식됐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초대 내각 후보자들의 면면이 공개된 후 오히려 전관예우 양상이 군으로까지 번지며 고위직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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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전역 후 무기중개업체 유비엠텍 고문으로 활동한 사실이 알려진 데 이어 가족이 군납업체 주식에 투자한 사실도 드러나면서 야당의 퇴진 요구를 받고 있다. 그는 19일 일부 기자와 만나 “당선인이 지명을 철회하지 않는 한 성실히 청문회에 임할 것이고, 청문회에서 철저한 검증을 받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 후보자가 2년간 근무했던 유비엠텍은 K-2 전차에 들어가는 파워팩의 군납을 시도했던 업체이고, 김 후보자는 합참의 전력기획부장을 역임했다는 점에서 ‘국방 전관예우’라는 새로운 양상을 노출시켰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미 군내에선 예비역 전관예우가 불법 로비를 넘어 군사기밀 유출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불거졌었다. 2011년 김상태 전 공군참모총장이 기소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2~3급 군사기밀을 빼내 미국 최대 군수업체 록히드마틴에 넘긴 혐의였다. 김 전 참모총장은 록히드마틴 측 국내 무역대리점을 설립해 운영해 왔다. 록히드마틴은 F-16, F-35 전투기의 제조업체다. 전문 분야 근무(공군)→퇴직 후 관련 업체에 재취업(록히드마틴)→은밀한 정보 제공(군사기밀 유출)으로 이어지는 불법적 전관예우의 악순환이다. 2008년엔 스웨덴 사브그룹에 한국형 전투기(KFX) 사업 관련 정보를 넘겨준 혐의로 예비역 공군 소장이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은 적도 있다.

지난해 유비엠텍 시무식 때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빨간 원)가 앉아 있는 모습. 이 사진은 최근 회사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삭제됐다.

 ‘퇴임 이후’가 정해져 있다 보니 현직에 있을 때부터 ‘퇴로’를 챙기는 경우도 생긴다. 국방부 검찰단은 19일 방산업체 등에서 뇌물과 여행경비를 받고 링스헬기 시뮬레이터 사업수주 및 납품 편의를 제공한 해·공군 영관장교 5명을 적발했다. 국방부 검찰단에 따르면 이 중 윤 모(41) 해군 소령은 A방산업체로부터 4000여만원과 800만원 상당의 베트남 여행 경비를 지원받고, 국방과학연구원이 발주한 링스헬기 시뮬레이터 개발 사업 때 군의 요구사항을 낮춰줬다. 신모(42) 공군 중령은 스텔스 도료와 관련한 개발 정보를 제공한 대가로 B방산업체로부터 베트남 여행경비 420만원을 받은 혐의로 징계 의뢰됐다. 국방부 국제정책관실에 근무하면서 취득한 해외 무관전문(첩보) 500여 건을 CD롬에 담아 통째로 A방산업체에 제공한 김모(47) 공군 중령도 징계 처분을 받았다.

 법조계, 경제관료들에겐 관행적 전관예우가 이미 상식화돼 있다. 민주통합당 김기식 의원은 지난해 10월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제출한 자료 등을 토대로 김앤장·광장·태평양·세종·율촌·화우 등 소위 ‘6대 로펌’에서 활동하는 공정위 퇴직자가 41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번에도 현오석 경제부총리 후보자는 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장, 세무대학장(관)→우리금융 사외이사(민)→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을 거쳐 경제 부처 장관으로 돌아오는 전형적 경제 관료의 관-민-관의 순환 사이클을 보여줬다. 부산고검장 출신의 정홍원 총리 후보자는 법무연수원장, 중앙선관위 상임위원(관)→법무법인 로고스(민)→총리 후보자(관)로 이어졌다.

 현직 퇴임 후 다시 관으로 복귀하기 전까지 민간 유관 기관에서 고액 연봉을 수령하는 것도 동일하다.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퇴임 후 유비엠텍에서 2년간 2억1000여만원을 받았다. 정 총리 후보자는 로고스에서 2년간 6억7000여만원을 수령했고, 현 부총리 후보자가 사외이사로 재직했던 우리금융은 사외이사들에게 연평균 2억여원을 지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성대 김상조(경제학과) 교수는 “관료 출신을 받아들이는 기업 입장에선 사실상 로비스트 역할을 목적으로 한다”며 “결국 관료 경험이라는 공적 자산이 사적 이익에 이용되면서 정부 정책의 공정성을 훼손하게 된다”고 반박했다.

최준호·박민제·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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