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마초 남성도 매력적일 수 있다는 새로운 발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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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한국 남자들에게 이런 팔색조의 매력이 있는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물론 현실이 아닌 스크린상의 얘기지만. 요즘 TV드라마건 영화건 여배우들은 안 보이고, 온통 남자 배우들로 넘쳐난다. 과거 여배우 전성시대엔 남자 한 명에 여러 여배우가 삼각관계를 벌이더니 요즘은 한 여자에 여러 남자의 구도로 바뀌었다.

 TV드라마는 한류 붐의 주역인 꽃미남 차지다. ‘남성이 저렇게 아름다운 생명체였나’라는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꽃 같은 젊은 남자 배우들은 화수분처럼 끊임없이 솟아난다. 그렇다 보니 요즘 상대 여배우는 연기력이 안정된 30대들이다. 신인 여배우들의 구직난이 걱정될 정도다. 노련한 여배우들은 탄탄한 연기력으로 ‘풋풋한’ 남자배우들을 받쳐주고, 관객의 기억에서 사라진다.

 한데 최근엔 기존 꽃미남과는 아예 종(種)부터 달라 보이는 새로운 남성성이 영화 스크린을 누빈다. 30~40대 마초남들이다. 요즘 충무로의 트로이카는 김윤석·류승룡·하정우라고 할 정도다. 나이가 주는 원숙함, 풋내라고는 없는 여유 있고 프로페셔널한 연기력, 외모엔 무심한 듯 덥수룩하게 기른 수염까지. 이들은 딱 봐도 마초다. 그런데 현실에서 늘 접하는 무례하고 무식한 전형적인 꼰대 스타일의 마초가 아니다. 무식을 자랑삼지도 않고, 무심한 듯 섬세하고 성차별적 이미지를 희석한 이들은 설렘과 감동을 준다.

 VOD로 본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 뻔뻔한 마초 바람둥이 류승룡이 유머러스하고 여성의 감성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모습에 감동해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영화관을 끊고 살았던 내가 ‘7급 공무원’ ‘최종병기 활’ 등 류승룡 출연작들을 두루 찾아 봤다. ‘마초에게 이런 감동이 있다니’. 그리고 ‘7번방의 선물’을 보러 영화관 가는 일을 ‘해브투두(have to do, 꼭 해야 할 일)’ 목록에 올려놓았다. 매주 두 차례나 ‘분수대’를 써야 하는 이 바쁜 와중에….

 현실로 돌아오니, ‘쩝~’. 마초 아저씨들은 많은데 매력과 감동이 없네. 남자들은 말한다. “요즘 여자들 무서워. 여자들 세상이야.” 그런데 보니 남자들 저력도 죽지 않았다. 비현실적으로 아름답게 타고난 외모가 없어도 배려할 줄 아는 태도와 유머까지 겸비한 우직한 매력으로 영화판 판도를 바꾸지 않았나. 아예 여배우들을 썰물처럼 밀어내면서 남자 배우들의 힘으로 영화관에 수백만의 관객을 끌어모으니 말이다. 여기엔 여전히 남성미를 사랑하는 여성들의 힘이 한몫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어쨌든 현실의 남성들도 무례함과 구태의연한 가부장적 추억에서 벗어나 새로운 매력을 찾는다면 원천적으로 남성을 사랑하는 여성의 힘까지 보태 얼마나 시너지가 날까. 그나저나 류승룡 보러 영화관에 갈 짬이나 내야 할 텐데….

글=양선희 논설위원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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