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공기업은 전리품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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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공기업의 임원인사가 대선에 이긴 측의 전리품일 수는 없다. 하지만 새 정부가 선임할 공기업이나 산하단체 임원 가운데 2백50~3백명을 민주당에서 추천하겠다는 정대철 최고위원의 말에서는 그런 발상이 엿보인다.

집권당이 자기네 인사를 정부와 그 산하단체에 보내 정책추진에 앞장서도록 하는 것은 나무랄 일이 아니다.

집권 공약 이행이나 강력한 개혁 시책을 펴기 위해 정무직을 대통령과 호흡을 같이하는 인사들로 채우는 것은 오히려 절실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선거에 기여한 당직자 내지 후원자를 챙기는 차원에서, 그것도 공기업의 영역에서라면 문제는 사뭇 달라진다.

鄭위원도 이런 비판을 고려한 듯 '개혁성이 요구되는 자리'에 한정하고 당내 인사위의 심사를 전제했다. 그렇더라도 공기업 임원자리를 엽관(獵官)의 손쉬운 방편으로 생각하는 듯한 자세에 공감할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적지않은 공기업이 엄청난 적자를 내 국민에게 부담을 주고 있다. 그 이유가 과거 정권이 전문성 및 경영자질과는 무관한 이른바 낙하산 인사를 공기업에 무리하게 했기 때문임은 잘 알려진 얘기다.

정부가 부실덩어리의 공기업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마당에 또다시 공기업을 정실인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시대역행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대통령직 인수위측은 노무현 당선자도 동의했다는 鄭위원의 발언을 부인하면서 엽관 숫자가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일반의 의구심은 여전하다.

鄭위원의 위치나 과거 집권측의 행태에 미루어 그럴 가능성이 충분한 탓이다. '盧정부'는 DJ정부가 민심으로부터 이반된 이유가 무차별 편중.정실인사에 있었다는 것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집권당 인사의 '준공직' 진출에 따르는 시비를 차단하기 위해선 우선 그 대상 범위와 자격요건 등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한 뒤 엄정하고 투명한 심사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 하다.

그것이 대선이 죽기살기식 싸움터로 변질되는 것을 막고 당선자의 공기업 구조개혁을 앞당기는 일이기도 하다.